2011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 손진책, 장윤규, 최동훈, 김영준, 최성민, 김성원

삶이 삶답게 흘러가서,산천과 대기와 우주 전체와 하나가 되어 어우러지는 춤마당을 “살 판”이라고 했다. 길과 손길이 닿는 곳마다 일대 사건이 일어나고 안은미의 춤은 석양머리 적막강산의 춤이 아니라 이처럼 “살 판”의 춤이다. 안은미의 춤은  죽임의 문화를 살림의 문화로 돌려 놓는다. 사람을 살리는 일, 이 살림을 자기의 일로 생각하는 것을 “살림살이” 라고 하는데, 안은미의 춤은 “살 판”의 춤이자 “살림살이”의 춤이다. 안은미의 춤에는 이름 없는 이들의 숨결을 살려놓는 광대의 힘이 있다.

– 손진책(극단미추 대표, 국립극단 전 예술감독)

 

 

 

세계적인 무용가인 안은미의 열정은 어떠한 경계도 한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동양과 서양의 구분도, 현대와 고전의 기준도 파괴한다. 

정신과 육체, 저승과 이승, 공간과 장소의 경계를 넘나들며, 무용의 한계를 치열하게 파괴한다. 무용 안무뿐만 아니라 음악, 무대디자인, 의상, 퍼포먼스, 등의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통합적인 예술가의 삶을 완성한다. 그것이 안은미의 힘이다. 

– 장윤규(건축가)

 

 

 

처음 안은미의 춤을 보고 나온 어느 저녁. 그녀의 춤에 몽롱하게 취해 집에 돌아오다 후회가 밀려왔다. 왜 나는 그녀의 춤을 일찍부터 보지 않았을까. 하다못해 저번 공연은 어떤 이유로 놓쳤을까. 나에게 그녀의 춤을 한번 보라고 권유했던 사람들이 원망스러웠다. 좀 더 강하게 밀어 부쳤어야지, 나를.  

 

재빨리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고 열심히 안은미의 춤을 보려 다녔다. 인생의 수확이다. 영화에서 예술적 미적 재미적 감흥을 찾아 헤매 왔던 나는 즉시 안은미가 몸부림치는 걸쭉한 예술적 미적 재미적 감흥에서 빠져 나오기 싫어진다. 게다가 한번 보고 나면 그 잔상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중독성이 강하다. 민망하지만 가끔 집에서 흉내를 내보기도 한다. 

 

영화가 스크린 위의 종합예술이라면 안은미의 공연은 살아있는 종합예술이다. 강렬한 색감의 미술과 의상, 종잡을 수 없지만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드라마, 살아 움직이는 무용수들, 그 모든 것을 감싸 휘젖는 음악이 안은미의 연출로 눈앞의 무대 위에서 관객을 사로잡는다. 물론 춤꾼 안은미의 등장에는 눈조차 깜빡이기 아깝다. 

 

어쩌면 춤은 원래 그런 건데 안은미가 알려준 걸지도 모른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에는 스페인 춤 공연이 가끔 등장한다. 등장인물은 그 춤을 보고 자신이 누군가를 그리워하거나 미워한다는 걸 알아간다. 안은미가 스페인 사람이었다면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분명히 그녀를 출연시켰을 거라고 확신한다. 한국영화에서 그녀의 춤을 보고 싶다. 그건 우리 모두에게 즐거운 일이니까. 

– 최동훈(영화감독)

 

 

 

15년 전쯤이었던가, 네덜란드에서 일하고 있을 때, 박박머리에 깃털 같은 옷과 신발로 감싸고 있던 특이한 첫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후 가끔 볼 때마다, 감성과 이성, 개인과 사회, 문화와 산업, 로컬과 글로벌까지, 상대적인 벼랑의 중심을 잡아가는 삶의 궤적에 감탄 한다. 더 좋은 좌표를 보여줄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 김영준(건축가) 

 

 

 

“나는 언어의 시각적 표현을 다루는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여서 그런지 습관적으로 감각적 현상을 언어로 바꾸는 습관이 있다. 즉,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경험에 언어적 질서나 의미를 자꾸 더하려 한다. 그런데 그렇게 언어적 구조물을 세우면 그 그림자로 슬쩍 빠져나오는 이가 있느니 바로 안은미다. 그의 춤은 언어나 개념으로 (또는 그와 유사한 감각적 체계로) 환원되기를 거부하는 것 같다. 신기하다.” 

– 최성민(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

 

 

 

내가 공연, 특히 현대무용을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공연의 ‘시간’에 있다. 미술의 ‘시간’과는 완연히 다른 공연의 ‘시간’은 나에게 긴장감, 교감, 몰입의 감각을 작동시키기 때문이다. 한 시간 남 짓 한 짧은 시간 동안 나를 완전히 사로잡는 무대를 만드는 예술가 안은미의 무대를 내가 처음 만난 건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처음 본 그의 독무는 진한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안은미의 몸짓은 무질서, 흐트러짐, 뒤죽박죽, 변화무쌍, 즉흥성과 함께 전개된다. 그의 몸짓은 구태의연, 안주, 질서, 평온함을 뒤 흔들면서 거기서 생산되는 오묘한 ‘생성의 기운’을 감각화한다. 그래서 안은미의 무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기를 할 때처럼 긴장감을 갖게 하고, 움직임의 거친 탄력이 어디로 튈지 모를 때 느끼는 두근두근함이 있다. 그의 무대는 우리의 이성, 논리, 분석의 능력을 모조리 앗아가 버린다. 그의 춤은 내가 그 어떤 생각을 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즉흥적이고 현란한 때로는 처절하기도 한 그의 몸짓은 나의 머리가 아니라 가슴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때로는 소름이 돋게 하고, 가슴이 찡하기도 하며 나의 평이한 시간을 독특한 체험으로 전환시킨다. 이게 안은미의 아름다움이다. 안은미가 춤을 잘 춰서 그런 것만은 아니며, 그의 ‘끼’ 때문만도 아니다. 안은미의 몸짓은 무질서를 감각화하며, 질서가 깨지는 순간의 묘한 긴장감, 섬찟함 그리고 쾌감을 우리와 공유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안은미는 무질서 그 자체다. 빡빡머리, 쫑긋쫑긋한 표정변화, 걸쭉한 목소리, 총 천연색으로 도배한 정신이 확 드는 패션감각(?), 드센 제스처… 그의 일상의 몸도 무질서 그 자체다. 그의 무질서는 나의 편안한 질서를 뒤흔들며, 아주 묘하게 압도하지만, 언제나 유쾌한 만남으로 전환된다. 

– 김성원(전시기획, 미술평론,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