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미의 탄츠티어터 전시 <백남준 비디오 아트와의 혼례식> – 이영철

안은미의 탄츠티어터 전시 <백남준 비디오 아트와의 혼례식>

이영철(백남준아트센터 초대관장)

  제1회 백남준예술상 수상 기념  

 

2008년 개관한 백남준아트센터의 첫 백남준예술상이 안은미의 품에 안겼다. 이 상은 실 프로이에, 아드리안 로버트, 이승택에게도 주어졌지만 무용가로서의 안은미가 백남준예술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무언가 다른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세상을 떠난 피나바우쉬가 살던 부퍼탈은 백남준의 첫 개인전이 열렸던 파르나스 갤러리가 있던 독일 북부 소도시이다. 피나바우쉬에게 발탁되어 유럽의 실험적인 무용계에 알려진 안은미가 백남준에게  바치는 오마주 퍼포먼스를 과연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무척이나 호기심이 갔다. 백남준 처럼 변화무쌍하고 유머러스하고 카리스마가 넘쳐나는 이 뛰어난 무용가는 놀라운 연기력과 담대한 스케일로 청중들을 완전 사로잡았다. 25대의 기중기들이 아트센터 건물 앞 마당에 마치 독일의 뮌스터 시청 앞 광장에 놓여있던 은색의 자동차들(그 안에 가득 채워진 TV 모니터들에서 20세기 문명의 사망을 알리는 모짜르트 레퀴엠이 울려퍼졌다)처럼 늘어서 있었고 위대한 예술가가 살다간 지상의 삶의 74년을 기념하여 74대의 피아노가 건물 앞 도로변을 가득 메웠다. 그 가운데 기중기에 높게 매달린 24대의 육중한 피아노가 베토벤의 광시곡 연주에 호응하며 천천히 반복적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고 (기중기의 조종간을 맡은 인부들은 관객들에게 리듬감과 쾌감을 선사하는 일시적인 예술가가 된다)안은미는 어느 순간 멋진 웨딩 드레스를 입고 관객들 앞에 자신을 홀연히 드러냈다.

 

수백 개의 흰색 넥타이들로 엮어 늘어뜨려진 우아한 치맛자락의 일부를 잘라 관객들에게 선물로 나누어주며 그녀는 달이 중천에 떠오르자 선녀 처럼 기중기에 높이 매달려 춤추기 시작한다. 백남준의 혼을 불러내 자신을 내맡긴 백색의 신부가 되어 펼친 이 웅장한 무용 퍼포먼스는 연주곡이 점차 거세어지면서 그녀는 자신의 손에 들린 도끼로 바로 옆의 기중기에 매달린 피아노를 향해 온 힘을 다해 충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달빛 허공에 매달려 피아노를 격렬하게 부수기 시작했다. 흰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점점 전쟁 기계의 여전사로 변모해 간다. 예술사의 빅뱅이 되는 백남준의 첫 개인전에서 보이스가 망치를 들고 나타나 로비 입구에 미리 마련해둔 이바하 피아노를 부수게 하는 백남준의 시나리오는 아직까지 달의 뒷면 처럼 수수께끼로 가려져 있다. 유라시아웨이를 인연으로 평생의 예술동지가 된 백남준과 보이스는 부퍼탈에서 서구 음악의 여신인 뮤즈를 살해하는 ‘완전범죄’를 저질렀고, 동경의 소게츠 홀에서 펼친 듀엣 콘서스에서 보이스가 검은 판에 그린 늑대 발자국을 백남준은 모르스 부호가 아니라 ‘뮤즈 코드’라고 슬쩍 바꿔 말했다.

 

안은미가 초원의 늑대와 같은 이 천재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트릭스터’ 극 속으로 들어가 춤을 추며 혼례식을 행하는 모습은 너무도 극적이고 아름답다. 그녀는 몽고 유목민 샤만들이 예식에서 하듯 파손된 피아노 조각들을 모아 불에 태우면서 오프닝 퍼포먼스를 끝냈다. 이어서 두달 간 지속된 수상자들의 전시 속에서 안은미는 백남준이 최초로 만들어내는 <음악의 전시> 처럼 자신의 ‘탄츠티어터’ 전시를 만들었다.

 

모양과 분위기가 다른 멋진 웨딩 드레스들로 정장을 한 12명의 매혹적인 신부들로 자신을 분장해 등신대 크기의 해상도 높은 사진 작품을 전시했다. 이 사진 작품들 안에는 백남준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다양한 이미지의 각기 다른 흔적들이 콜라주되어 있다. 전시에서 흥미로운 점은 순백의 드레스를 차려 입은 12명의 매혹적인 안은미 자신과 퍼포먼스를 행한 뒤에 자신의 몸체가 영원한 하늘로 빠져나가고 남은 기성품으로서의 드레스가 피아노의 잔해 위에 올려져 있다. 비디오 아트가 탄생한 파르나스 갤러리 전시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13대의 TV는 오늘날 일반화된 비디오 아트의 최초의 신부들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 가운데 고장난 한 대의 TV는 몸체가 빠져나간 드레스로 남아 파괴된 피아노 위에 자신의 퍼포먼스를 편집한 동영상 모니터와 함께 놓여졌다. 백남준 비디오 아트의 신부라고 말할 수 있을 실험적인 TV들은 뒤샹을 원조로 하는 ‘레디메이드-컬트’를 넘어 <네트워크로서의 오브제> 등장의 새 시대를 열었다. 1917년 발표되어 예술사의 영원한 상징이 된 뒤샹의 <샘>은 모나리자를 성적인 코드로 변형시킨 <L.H.O.O.Q ; 그녀의 엉덩이가 뜨겁다>와 연관된 것으로 성 행위에 있어 여성의 사정(분수)을 함축하는 기묘한 물건이기도 하다. 일곱난장이와 백설공주의 이야기를 성적으로 각색한 듯한 <독신자 기계>를 거쳐서 집단 성행위를 암시하는 <에탄 돈느>(정액으로 뒤덮힌 여성의 사체)로 끝나는 남성 지배시대에 ‘달의 선승’인 백남준은 “살아있는 고래의 질 속으로 기어서 들어가라”는 선적인 화두를 던졌다. 이에 화답하듯 동아시아 출신의 무용가 안은미는 백남준 비디오 아트와의 영적인 혼례식을 총체적인(integral) 탄츠티어터 전시로 탁월하게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