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nno Yuki

2020-08-12

몸으로/몸소 배우기: 안은미 컴퍼니의 지향점에 대해서

콘노 유키

 

들어가며: 열린 태도와 안은미 컴퍼니

다른 나라의 문화를 알고, 나아가 예술 작품의 주제 혹은 소재로 다룰 경우,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최근 몇 년 동안 예술을 둘러싸서 국가와 지역의 역사 및 사회를 소재 혹은 주제로 다루는 데 곤란함이 분명 부각되었다. 그 지역의 이슈를 소재로 삼아 착취한다는 이야기를, 다른 경우에 착취의 문제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매개 역할로 예술 작품은 받아들여진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작품은 관람객에게 양면적인 입장을 공유한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양면성에 문제는 결국 관람객이 스스로 판단하고 의견을 제시하면서 작품 자체의 의미와 주장을 토막 내게 된다. 작품 자체에, 소위 말하는 ‘열린 태도’가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관객들의 확고한 태도와 관점으로 판단된다. 말하자면 열린 태도란 작품에 대한 태도가 아니라 거의 관객 입장에서 주어지는, 그러나 어느 한쪽에 치우친 입장에 더 가깝다.

 

그렇다면 작품 자체가 열린 태도를 보유하고 관람객 또한 열린 태도로 보게 되는 경우는 전무할까? 바꿔 말하면, 작품에 내재된 열린 태도를 관람객 또한 어떤 하나의 입장에 경도될 일 없이 받아들일 수 없을까? 안은미 컴퍼니의 이번 프로젝트는 이런 질문에 도전해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최근 몇 달 동안, 안은미 컴퍼니는 다른 지역의 문화를 무대에 올리려고 시도했다. 사실 무용이라는 말은 최근에 양극단으로 분화된 추세로 보이는데, 한쪽은 순수예술, 그리고 다른 한쪽은 문화산업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어떤 위기로 오늘날 부각되었다. 난해한 컨템포러리 댄스와 관광객을 위한 돈벌이라는 두 가지 위기를 양쪽에 두고 무용은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기대되는 바는 바로 이런 질문 제기와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와 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전통무용을 이해하고 작품으로 어떻게 실현하는지 고민해보는 이번 프로젝트는, 방법론의 문제는 물론, 무엇보다도 지금 직면한 두 가지 위기에서 ‘퓨전’처럼 가볍게 소비되지 않게 접근하려는 시도이다. 

 

이하 필자가 쓰는 글은 본 프로젝트 중 말레이시아와 태국에서 경험한 내용을 적은 내용들이다. 필자는 무용수가 아니고, 작품을 무대에서 선보일 때 이번 스케줄이 오롯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단순히 이번 글이 무용과 관련 없는 인물의 정리가 안된 기행문에 그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중요한 점은 필자가 이번 리서치 트립에 참여하면서 필자의 시선과 몸짓부터 전체 프로젝트의 의미를 그려나가는 데에 있다. 앞서 말했듯이, 지금 현재 무용 예술은 두 가지 위기에 처해 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여전히 극복할 수 없는 사회 역사적 문제들이 깔려 있다. 말레이시아의 역사와 태국의 역사를 들으면서, 무용 또한 민속과 왕조 사이를, 그리고 오늘날에 거대 산업의 힘에 짓눌려 비주류로 간주되기도 한다. 비록 며칠 안되는 짧은 스케줄이었지만, 이런 문제에 대한 ‘발버둥’이라는 몸짓으로 개입한 안은미 컴퍼니의 도전을 필자의 시선으로 서술해보고자 한다. 

 

 

1월 20일: 한국 서울 / 일본 사이타마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매번 나리타 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는데 환승이 더 편한 위치는 하네다 공항이었다. 예전에 하네다와 나리타의 차이를 물어본 지인이 있었는데, 도쿄에 살지 않은 내 입장에서는 별 차이가 없었다. 거의 같은 시간 전철을 타야 하고 교통비도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패턴에 워낙 익숙해서 그런지 이제는 이동하면서 크게 설레지도 않는다. 도착지에서 어떻게 가고 무엇을 보고 이런 고민을 거의 하지 않고서도, 이제는 일본과 한국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막연한 기대감이나 흥분도 없이 전철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 금방 공항이다. 공항으로 가는 여정은 이제 마음이 들뜨지도 않고 일상생활의 연장선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번 여정은 좀 달랐다. 아마도 이미 정해진 패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교통카드를 충전하거나 편의점에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고 도착역 근처에서 밥을 먹는 패턴은 예정되어 있지 않았다. 아니, 예상을 했어도 막상 순조롭게 진행 못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 도착지는 한국도 일본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번 리서치 트립은 말레이시아와 태국에 가서 전통 무용을 비롯한 경험을 하고 이야기를 여러 가지 나누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나는 글로 기록하는 역할로 참여하게 되었다. 말레이시아와 태국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나는 태국어도 말레이시아어도 잘 알지도 하지도 못한다. 심지어 문화 관습도 전혀 파악을 못 한 상황이었다. 이번 여정을 가기 전, 간단히 리서치하기 전에 알던 사전 지식은 고작 음식밖에 몰랐다. 그 정도로 말레이시아와 태국은 같은 아시아권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상당히 거리가 먼 두 나라였다. 굉장히 공항으로 가는 여정이 즐거웠다.

한편 불안도 많이 생겼다. 리서치 트립에 참여하고 글로 나중에 정리하는 역할에 사실 불안감은 없었다. 오히려 곧 비행기를 타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팀 멤버들과 잘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불안 때문에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말레이시아와 태국은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못 가본 도시였다.  최근 십여 년,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익숙한 패턴으로 비행기를 타고 또 내렸다. 본가가 있는 일본과 다니는 학교가 있는 한국을 오갈 때, 나는 사실 별 부담 없이 왔다 갔다 했다. 두 언어로 말도 알아듣고 대답할 수 있다. 지내는 데사실 무리가 없었고 사실 해외라는 느낌도 이제는 전혀 들지 않는다. 그런데 남쪽이라고밖에 형언 못 하는 말레이시아와 태국은 어떤 나라일까? 비행기에서 내리고 입국심사에서 제대로 의사소통이 될까? 호텔까지 제대로 갈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오랜만에 가지게 되었다.

 

접수를 하러 카운터에 줄을 서는데 앞에 계신 여자분과 어쩌다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나의 어설픈 영어 실력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리서치를 하러 가고 현지에서 다른 팀원을 만난다. 전통 무용을 연구한다 등등. 잘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아 자연스럽게 제스처가 따라왔고 서로 이해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계속 나누었다. 여자분은 고향으로 잠시 간다고 들었다. 그러고 보니까 시기가 마침 구정과 겹쳤다. 잠시 이야기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걸 어떻게 가져가지..?” 앞에 줄을 서던 사람의 짐은 꽤 많아 보였다. 차가 있건 없건 나는 해외로 갈 땐 짐을 최소한 줄이려고 한다. 이유는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어서 그렇다. 그런데 이런 이유와 별개로 비행기 규정 때문에 사전에 제약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LCC의 경우 기내로 들고 탈 짐과 위탁 수하물의 무게가 엄밀하게 정해져 있다. 사실 어떤 짐을 들고 가도 손으로 들어볼 때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기 힘들다. 일본과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캐리어를 열어 고생 하는 사람을 수없이 봤는데, 이번에도 역시 앞에 줄을 서던 분들은 안타깝게도 추가 요금을 낸 다음 출국 게이트로 갔다. 여유로운 줄 알았지만, 아슬아슬하게 12킬로를 안 넘은 가방을 들고 나는 출국 게이트로 향했다. 대화를 나누니까 긴장이 많이 풀렸다. 몇 시간 뒤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한다.

1월 21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호텔 수영장센트럴 마켓바투 동굴호텔

 

아침 이른 시간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매번 이용하는 나리타 공항의 제3 터미널과 달리, 층고도 높고 넓게 느껴졌다. 그런데 공간감과 다른 느낌 또한 받았다. 더위와 습기이다. 일본도 서울도 추운 날이 계속되었는데, 하루 만에 내 몸은 더운 나라에 와 있다. 별생각을 하지 않아도 몸소 느끼는 더위에 반팔티를 얼른 입고 싶었고 음료수를 사고 싶었다. 호텔까지 가는 생각보다 옷을 갈아입고 갈증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만 컸는데, 막상 입국 심사에 한참 시간이 걸린다.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많은 사람이 들끓고 있었다. 다들 어디로 갈까? 몇 명은 중간에 어디서 만날지도 모르겠고 막상 만나도 서로 모를 것 같다.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무사히 게이트를 나올 수 있었다.

 

간식을 간단히 사서 호텔로 간다. 서울과 비슷하게 (일본이 유독 비싼가?) 말레이시아와 태국은 택시 운임이 그렇게 비싸지 않다고 한다. 사실 환전하고 환율 적용하면서 생각할 여유도 없었지만, 나중에 계산해보니까 말레이시아는 택시도 식비도 그렇게 들지 않았다. 도착 로비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그랩(grab) 애플리케이션을 켰다. 내 휴대폰 GPS를 통해서 택시를 잡는 시스템인데, 위치가 점점 내가 기다리는 곳으로 바뀌는 경험은 카카오택시를 처음 써봤을 때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마치 위에서 바라보듯이 차가 점점 내 쪽으로 오고 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어 바깥 풍경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했다. 가방의 무게와 비슷하게, 도착지까지 몇 분, 및 키로 남았다고 숫자를 봐도 사실 짐작하기 힘들다. 아예 처음으로 방문한 나라에서 설렘과 기대는 짐작할 수 없음에서 유래하는 것 같다. 택시 창문 너머 보이는 풍경을 통해 공항에서 처음 느낀 더위를 이제 이해하게 된다. 반팔을 입은 사람들, 길거리에서 시원한 과일을 파는 상인, 더워 보이는 관광객의 옷차림. 겨울에서 여름으로 바뀐 말레이시아에 도착했다고 비로소 내 몸이 이해하게 되었다.

 

안은미 선생님과 이번 리서치 트립에 참여하는 무용수 촬영 팀원과 인사를 나누고 호텔 6층 수영장에 같이 갔다. 몇 년 만에 하는 수영일까? 오랜만에 물속으로 들어갔다. 움직이려고 기억을 더듬어 본다. 내 몸으로 기억한 수영의 자세와 호흡, 초등학생 시절 이후로 제대로 따라 움직일 수 있을지 겁이 났다. 머릿속에서 동작을 떠올려본다. “여기서 팔을 올리고 여기서” 생각하는 시간이 있으면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 더 중요했다. 서서히, 마치 잠금장치가 풀리듯이 몸이 적응한다. 당시는 적응만 하면 쉬운 줄 알았던 수영도, 하다 보니 온몸의 근육을 동반하는 운동이라 알게 되었다. 한 시간 넘게 수영을 하다가 팔과 어깨, 그리고 허벅지가 점점 아프기 시작한다. 수영하는 방법을 몸소 배우고 익힌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몸 역시 알고 있었다. 날은 더웠지만, 물은 아주 차가웠고 내 몸도 자유로웠다.

이 날은 센트럴 마켓에서 식사와 쇼핑을 마친 후, 택시를 타고 바투 동굴로 갔다. 바투 동굴은 유명한 관광지여서 그런지 곳곳에서 말레이시아 언어가 아닌, 어느 정도 익숙한 말들이 들렸다. 영어, 일본어, 한국어가 가끔 들리는 이 장소는 원숭이가 아주 많았다. 교묘한 생각은 없을 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있다가 뭐든 뺏으려 걸어온다.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원숭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센트럴 마켓에서 들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소매치기 조심하자.” 어떻게 오는지도 모를 상대를 신경 쓰면서 가방을 챙기고 핸드폰을 꽉 잡고 걷다 보니 집중력이 경계심이 된다. 그럴 때면 내가 쇼핑을 하러 왔는지 사원을 관광하러 왔는지 잘 모른다. 거꾸로, 관광을 제대로 하려면 집중력이 아니라 산만함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계단에 서 있다가, 갑자기 가방이 무거워졌다. 서로 놀란 표정으로 원숭이와 나도 도망갔다.

1월 22일: 호텔Ask Dance Company: 마스터 클래스ASWALANU 센트럴 쇼핑 센터Temple of Fine Arts KL호텔

 

이 날은 본격적으로 춤을 배우는 날이었다. 그전에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무용이나 춤의 동작을 어떻게 기억할까? 머리로 기억을 한 다음 신체로 정보가 기록되는 것일까? 심지어 거울상을 보면서 어떻게 따라 할 수 있을까? 수영도 그랬지만 몸으로 기억하는 다른 경험이 떠올랐다. 바로 피아노를 배웠을 때 경험이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는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악보를 읽어가면서 못 쳤다. 오히려 암기하고 손으로 익힌 다음에야 자유롭게 칠 수 있었다.   춤과 무용을 따라 배울 때 비슷한 감각이 들지 않을까? 선생님의 동작, 나아가 자신의 모습을 거울상으로 보면서 내 몸에 일체시킬 수 있을까?

 

먼저 전통/현대무용을 하는 Ask Dance Company로 가서 마스터 클래스를 배웠다. 처음에는 옆에서 무용수들이 추는 모습을 계속 지켜봤다. 고개를 숙이는 동작이 일본의 예의범절이나 무용에 등장하는 ‘오지기’와 비슷하면서도, 허리를 구부리는 자세나, 시선의 방향이 조금씩 달랐다. 좀 더 유연한 인상을 받았는데, 그것은 손동작이나 발동작에도 돋보이는 특징이었다. 발동작과 손동작은 손가락 발가락에 신경을 쓰면서 유연하게 몸과 함께 흘러가듯이 움직였고, 동작을 보여주는 동안 신체의 무게 중심을 특이하게 놓는다. 곧은 자세이지만, 허리와 엉덩이만 살짝 뒤로 빼서 정면을 보는 자세로 동작을 계속한다. 팀원 무용수들이 어려워하듯이 쓴 표정을 짓고 보면 Ask Dance Company 단원과 자세가 미묘하게 다르게 나온다. 그 상황을 지켜보면서 같은 춤 혹은 무용이라고 해도 쓰는 근육이나 자세가 이렇게 다른지 처음 알았다. 사실 사전 정보로 리서치한 말레이시아의 무용은 어디까지나 그 무용의 의미나 동작의 의미에 머물렀다. 그런데 막상 무용수들이 다소 어려워하는 것을 보니까, 정말로 몰랐던, 말하자면 몸소 배워야 이해하는 정보라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지켜보다가 안은미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같이 참여하게 되었다. 머릿속에 동작의 특징을 이것저것 되풀이하고 거울을 보면서 따라 하려고 했지만, 전혀 안 된다. 몸이 유연하지 않아서 허리를 구부리고 등짝을 펴는 데 상당히 힘이 든다. 옆에서 선생님이 자세를 잡아주시는데 정면 거울에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쳐다봐야 해서 헛웃음이 나버렸다. 내 시선은 거울을 향해 있고, 말은 옆에서 듣고, 움직이는 신체는 내게 붙어있는데 마치 감각기관이 떼어진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어제 수영장에서 몸을 풀긴 했지만, 그렇게 신체 조건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허리에 무게중심을 실어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다음날에 타격이 올 정도로 몸이 아팠다.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전통 무용을 가르치는 잠주리아 선생님을 뵈러 ASWALA(Akademi Seni Budaya Dan Warisan Kebangsaan)로 갔다. 이 학교는 영어로 ‘National Academy of Arts Culture and Heritage’라는 의미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전통음악, 전통극 외에도 다양한 예술을 배울 수 있는 학교이다. 안에서 잠깐 수업 분위기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눈 뒤, 선생님이 소개해주신 Temple of Fine Arts KL로 갔다. 이 교육 시설도 ASWALA와 마찬가지로 수업마다 악기와 무용을 배우는 공간이 있었는데, 어린 학생 클래스, 성인 클래스, 등등 수업과 커리큘럼이 개설되어 있었다. 배우는 시기는 어릴 때부터 하면 역시 좋은지, 아니면 연령에 상관없는지, 배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감정이 생겼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일, 피아노 학원에 다닌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처음에 외국어를 공부했던 시기가 다시금 생각났다. 어학당을 다니던 시절에 몇 명 친구는 힘들어했고, 중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한국어를 낯설게 여겼다. 당시 서구에서, 미국에서, 그리고 나처럼 일본에서 온 친구가 있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국제학교나 몇 년 지내다 모국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었다. 어쩌다 한국에 와서 어쩌다 한국어를 배웠지만, 나는 다행히도 적응할 수 있었다. 예술이나 취미이면 경우가 다를까? 어떻게 전통예술을 유지하고 보존할 수 있을까? 그것이 물질적으로 남지 않는 몸짓, 동작, 움직임의 경우는 어떻게 계승해나갈 수 있을까? 한편으로 Ask Dance Company에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제 관광객의 볼거리로 전락하여 상업적인 성공에 치닫게 된다면? 그 자리에서 모두가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악기를 치고 있었다.

1월 23일: 호텔제니어리 선생님: 마스터 클래스ASWALA: 마스터 클래스, 인터뷰호텔

 

이 날은 거의 말레이시아에서 지내는 마지막 날에 가까웠다. 다음 날은 학교를 잠시 방문하고 나서 바로 공항으로 가서 태국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아주 밀도 있게 춤을 보고 또 배울 수 있었다. 먼저 잠주리아 선생님의 소개를 통해 오전에 제니어리 선생님의 마스터 클래스에 참여하였다. 어제 참여한 Ask Dance Company의 연습장과 거의 같은 크기였다. 춤의 소개와 함께 몸을 움직인다. 우리가 배우는 춤은 오디씨(Odissi)라는 이름의 춤이었다. 이 춤은 인도 서부의 고전적인 무용 중의 하나이고, 주로 사원에서 비공개적으로 추는 솔로 춤이라고 한다. 그런데 신을 위해 추는 이 춤은, 학대 문제로 80년 동안 금지되어 왔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신을 위해 추는 춤인데 신이 없어진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정확히는 스스로 신이라 생각한 인간들이 권력 행사의 주체가 되었겠다. 이런 착각에 빠지는 인간들이 그 당시에도 많았겠지만, 그러다가 대중을 대상으로 춤을 출 때 청소년이 여성 복장을 하고 추게 되었다고 한다. 계승하려면 아무래도 고쳐야 할 부분도 있고 변형해야 될 부분도 있다.

 

어제 Ask Dance Company의 춤 동작과 마찬가지로 오디씨도 발의 동작과 표정이 강조된다. 설명하는데, 이 춤은 원래 사원 건축에서 비틀어진 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안무라고 한다. 이번에도 역시 보면서 안무를 감각적으로 배우기로 하였다. 기본자세와 동작에 상징적인 의미가 가끔 들어간다. 예를 들어 주먹을 쥐고 엄지를 들면 각각 남자와 여자, 거북이와 물고기, 등등. 라마야나라는 사랑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춤은 신체 동작에 상징적인 모티브가 들어간다. 이 모티프를 보면 이야기를 모르고 있는데도 몇 가지는 단편적으로 이해가 된다. 보면서 “아 저건 동물 같다”라거나 “예의를 표하는 장면인가 보다” 하면서 보면, 말이나 이야기의 계승과 다른 특이점이 있다. 말을 하지는 않고 문자로 기록되지도 않지만, 몸에 기록된 정보는 더 보편적으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나는 말레이시아어를 읽지도 쓰지도, 알아듣지도 못하지만, 동작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수업의 막판에서, 안은미 컴퍼니의 무용수들이 이번 마스터 클래스에서 배운 내용을 곁들여 춤으로 보여줬다. 신체에 기록된 동작들, 방금 배운 기술을 몸에 일체시켜 춤을 추는 그들을 보면서 쉽게 말하는 ‘퓨전’과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동작도 쓰는 힘도 다르지만 몸으로 배우고 기록할 뿐만 아니라 계승해 나가기. 

 

같은 생각을 ASWARA에서 잠주리아와 마마 선생님의 마용을 보고 들으면서 생각했다. 마용은 연극과 성악, 기악 연주와 신체 동작, 그리고 복장/의상이 합쳐진 일종의 무용극이다. 궁정에서 추는 춤에서 유래되어 나중에 지역으로 전파하고 남은 춤이다. 노래의 가사는 자동 자막으로 처리되지도 않고, 중간에서 통역자를 통해서 전달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거기에 거리감이 있고 아무 의미가 없지는 않다. 보고 들으면서 의미를 발화하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역할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곳에 의미와 내용을 앞서는, 말하자면 압도하는 에너지가 있다.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과 함께 일체감을 이루어 마마가 부르지 못하면 잠주리아와 학생들이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나 내용보다 더 근원적인 힘이 먼저 나에게 온다. 목소리가 높아지고 나중에 가라앉는다. 그 자리에 있던 무용수, 리서치 팀원, 그리고 나는 아마도 그들의 말을 소리로 인지했을 것이다. 이야기보다 곡조로 받아들였고, 내용보다 에너지에 압도되었다.

 

마마는 어린 시절부터 마용을 배웠지만, 지금 상황을 안타까워하셨다. 안은미 선생님과의 대담에서 일곱 살부터 마용을 부모님 밑에서 접해온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현재까지 마용을 보호하고 싶은 심정을 토로하셨다. 마용의 기술을 몸소 배우고 터득하는 시간과 계승하는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고민해야 할까? 마용 자체는 민간에서 발전되었는데도, 마마가 보기에 나라는 그렇게 호의적인 태도로 마용을 보지 않는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일동은 말레이시아에서 마지막 저녁 식사하러 갔다. 음식은 먹으면서 춤을 봤다. 전통이란 무엇인가? 어떤 전형으로 자리 잡은 전통무용은 볼거리로 소비되고 쉽게 박수와 갈채를 받는다. 불특정 다수, 전세계적인 주목도, 식사 분위기를 좋게 돋워주는 무대장치. 살아남는 듯 보이는 춤은 곡해되어 식탁 옆에서 펼쳐진다. 우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관광객(처럼 보인 사람들)은 중간에 춤을 슬쩍 보거나 진행이 이쪽으로 오라고 하면 같이 춤을 추고, 아니면 그냥 유심히 밥을 먹었다. 같은 날 마마의 마용, 잠주리아의 춤, 그리고 마샬아츠를 보고 나니, 식당에서 선보여진 춤은 모든 것이 분리된 것처럼 보였다. 표정과 동작, 그리고 생각은 뿔뿔이 어디 가버렸다. 어제 거울로 본 내 모습과 흡사했고, 한편으로 아쿠아리움의 물고기처럼 보였다. 이들의 춤은 어디서 왔을까?

1월 24일: 호텔ASWARA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태국 돈므앙 국제공항

 

오전에 다시 ASWARA로 가서 인사를 나눈 다음, 짐을 싸 공항으로 출발했다. 터미널이 다른 관계로 택시를 중간에서 내렸다. 몇 시간 뒤에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고 리서치 팀과 인사를 나누었다.  무더위를 피하려고 공항 터미널로 들어갔다. 쇼핑센터에서도 봤는데 설날을 알리는 화려한 장식들이 눈에 들어온다. 시기 때문에 그런지 작은 터미널에도 사람들은 북적거렸다. 어떤 사람은 모국으로, 어떤 사람은 경유지로, 그리고 어떤 사람은 다른 나라로 떠날 것이다. 연휴는 그렇게 공항의 모습을 평소보다 활기차게 보여줬다. 이제 일본으로 돌아갈 때 경유지로 오는 것을 제외하고 말레이시아에 당분간 올 일은 없다. 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활주로 넘어 보이는 풍경만 보다가, 내가 말레이시아에 며칠 동안 실제로 있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어쩌면 어디서 본 것 같은, 어쩌면 몇 년 전 후쿠오카에 도착했을 때 아니면 유치원생 때 가족여행으로 오키나와에 갔을 때와 같은, 그런 풍경이었다.

 

태국으로 가는 비행기가 출발할 때까지 생각보다 여유가 있었다. 한 여섯 시간을 로비에서 기다려야 해서 나는 점심과 커피를 간단하게 해결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자 밀린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일본인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도, 일찍 도착해서 여유가 있는지 의자에서 편히 쉬고 있었다. 나도 편한 자세로 음악을 들으면서 이메일 답신과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에 있으면서 느낀 경험을 머릿속에서 꺼내 쓰고 있었다. 몸에 기록된 내용을 이번에는 글과 말로 푸는 시간이 되었다. 한국과 일본 여름과 또 다른 무더위, 물속으로 들어갔을 때, 동작을 따라 배우려다가 잘 안 되었을 때, 비를 맞았을 때, 세게 틀어놓은 택시 에어컨, 마마와 잠주리아, 그리고 학생들의 일체감, 어렵게 손으로 뜯어먹은 게 등등. 신체에 기록된 경험을 글로 풀기 역시 쉽지 않았다. 비유는 어디까지 비유에 그치고 제대로 그 경험을 전달하려면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몸소 경험해야 한다는 한 마디뿐이다.

감각적으로 경험한 내용을 간략하게 메모하고 있는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가 안내 방송을 듣고 비행기를 탔다. 태국은 말레이시아만큼 더울까? 환율이 얼마나 적용될까? 아마도 하늘을 날아가는 사이에 먼저 팀원들이 도착하겠지? 이것저것 생각을 하면서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매번 한국과 일본을 왔다 갔다 할 때 타는 비행기보다 커서 중앙에서 하늘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시간대가 저녁이다. 쉬고 있는데 내 몸이 떠 있는지 전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승무원이 음식과 면세품 카트를 끌고 가는데도 지상을 달리는 것처럼 와 닿았다. 예전에 도쿄에서 히로시마까지 가는 심야 버스를 탄 적이 있는데 그때와 상당히 비슷했다. 커튼을 닫으면 이제 버스가 달리는지, 내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에 있는지, 아니면 휴게소에 지금 있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고, 몇 시간 안 되어 태국 돈므앙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태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느낀 점은 말레이시아어와 달리 발음도 못 하고 읽을 수도 없는 점이다. 예를 들어 ‘출구’는 ‘Keluar’ 로 표기했다면 태국어는 ‘ทางออก’. 공항은 그래도 영어를 비롯하여 각종 언어가 붙어 있어 다행이지만, 시내로 나가면 어떻게 될까? 내가 영어를 잘 못 하다 보니 말레이시아에서 지낼 때보다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더 많아질 것 같았다. 식당에서 간단하게 밥을 먹으려고 해도 이미지가 없었으면 대체 어떤 음식인지 예측할 수 없다. 한국으로 놀러 간 관람객이 김밥천국에서 주문할 때와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 있어도 무슨 음식인지 모를 때가 많다. 현금을 식당 카드에 충전하고 밥을 먹고 얼른 택시를 잡으러 갔다. 여기서도 그랩으로 택시를 불렀는데 자동 번역 기능이 있어서 운전사 메시지가 영어로 변환되어 전달되었다. 혼잡한 시간대여서 차를 세우는 위치를 바꾸자고 연락이 왔다. 무사히 택시를 탔는데 방콕의 밤은 시각적으로 쾌적했다. 이상할 정도로 현란한 불빛도 없고 서울이나 도쿄의 중심지를 왔다 갔다 할 때보다 눈에 들어오는 정보가 과도하게 많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타고 가는 데 편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사히 호텔로 도착했다.

1월 25일: 호텔Alliance Francaise Bangkok야시장호텔

 

아침을 먹으면서 호텔 창밖을 봤다. 밤이랑 역시 다른 풍경이었다. 열기를 품은 밤이 다소 풀린 느낌이랄까? 나는 밤의 분위기가 더 마음에 들었다. 말레이시아와 비교하면 밖에 공기가 안 좋아 보였다. 어제 호텔까지 오면서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도 어둠이 빨아 마셔서 그런 것 같다. 일본을 떠나기 전에 예전에 태국에 간 적 있는 지인한테 팁을 물어봤다. 태국 역시 처음 가는 나라였기에, 또 확산하는 인터넷 정보망에서 정확한 정보를 걸러낼 필요가 있었기에, 차라리 경험담을 들어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때 지인 이야기로는 태국은 공기가 안 좋다고 이야기했다. 배기가스가 퍼지니까 밖에 걸어 다닐 때 마스크를 꼭 쓰고 다니라고 조언을 해줬다. 날이 밝아 이제 이해가 됐다. 부분마다 얽혀 있는 검은 색 전선, 신호등이 없는 도로, 흐름에 맞게 지나가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그리고 뿌연 연기. 어젯밤 보이지 않던 방콕의 모습이 이제 드러난다.

 

오전에 잠깐 쉬고 점심시간은 각자 먹기로 했다. 방콕에서 본격적으로 보내는 첫날인데 로컬 음식 정도로 궁금한 것은 없었다. 본토에서 먹는 태국 요리는 어떨까? 사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는 우동이 일본 우동과 사뭇 다르지만 나름의 맛이 있는 것처럼, 서울에서 주로 먹던 똠얌꿍은 한국 스타일일지도 모른다. 입맛만큼은 기원을 따지기 힘들다. 그 나라의 수확물이나 사람들 입맛에 맞게 식사도 바뀌고 때때로 스타일 자체가 변형한다. 그 결과 꼭 긍정적일 수 없겠지만, 어떤 맛이 나는지 궁금했다. 몸소 실험해보고 싶은 마음이랄까? 호텔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식당을 찾아가 앉았다. 직원분이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추천해주시는 음식도 포함해서 여러 개를 일단 시켰다. 날은 더웠지만 그래도 꼭 먹어보고 싶은 마음에 똠얌꿍을 시켰다. 향신료가 생각보다 셌지만, 역시 본고장의 맛이었다. 국물에 갖가지 향신료가 들어가 있었는데, 어떤 것은 기묘하게 생겼고 맛만 봐서는 이게 왜 들어갔는지 궁금증이 생길 정도였다. 만약에 향신료 모습이 먼저 보였다면? 먹어보는 데 상당히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경험을 해보는 일이란 시각적인 전형이나 틀에 잡힌 고정관념에 앞서 행동하는 것과 같다. 막상 어떻게든 해야 하는 상황, 고민이나 주저 없이 사람이나 환경, 대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마주하는 태도. 벌써 아주 옛날이야기처럼 실감하지만,,, 처음에 어쩌다 한국으로 유학을 온 경험과 꽤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런 태도를 갖추기 쉽지 않다. 나이가 들면 눈치를 보고 또 소심해지고 그렇다고 막 대하면 예의범절이 없다. Alliance Francaise Bangkok에 가서 본 <STEP> 상영회에서 느낀 점은 바로 이런 부분이다. 영상을 통해 전해지는 무용과 춤에 대한 생각은 서구의 인식이나 역사에 비교되고 종종 제3세계의 씬을 뒤떨어진 것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역작용하듯이, 제3세계의 입장에서 스탠더드한 기준이나 행보에 맞게 뭐라도 하려고 하기도 한다. 어떨 땐 너무 급속하게, 어떨 땐 거대 담론에 쫓기듯이 따라 하고 보여주려고 한다. <STEP>에 등장하는 무용수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는데, 다큐멘터리로 보여주는 사람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들을 취재했을까?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야시장을 구경하러 갔다. 사람과 물건으로 뒤섞인 가운데 구경하기. 가짜 시계, 관광객, 술과 배기가스 냄새. 남대문 시장에 처음 갔을 때 DDP는 없었고 스크린 도어도 없었다. 몇 년 사이에 급속도로 성장했던 모습을 잠시 떠올려 본다. 이 야시장은 어떻게 발전 혹은 쇠퇴할까? 지금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데서 이런 우려를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시선을 끄는 사람과 물품 사이를 뚫고 간다. 어떤 상인은 영어로 가끔 일본어나 중국어로 말을 건다. 나는 태국을 다 돌아다니지도, 예전에 돌아다닌 적도 없지만, 야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태국에 와서 하루 이틀 사이에 한 경험이 집약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반대편 건물 공사 현장에서 다 같이 트럭을 타 집에 가는 모습, 가짜와 지나치게 강조된 전통이 섞이는 시장, 낮에 더 어두운 거리의 모습. 신문물과 전통은 그것들끼리 싸움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발전과 보존의 명목으로 함께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다. 마치 공항에서 그 나라의 전통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가 둘 다 소개되듯이, 처음 와본 태국의 풍경은 몇 년 전 서울의 모습처럼 친근하게, 그런데도 우려가 섞인 채 와 닿았다.

 

 

1월 26일: 호텔임근준 선생님 강의전통 무용 마스터 클래스호텔

 

알렉스 커 선생님의 집에서 오후에 전통 무용 마스터 클래스가 있었다. 곳곳에서 가지런히 일본이나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여러 나라 골동품이 놓여 있었다. 태국 문화 자체는 오래된 왕국과 원시 부족 외에 쿠메르인,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온 민족이 있다고 한다. 방콕 이전의 아유타야가 수도인 당시부터 화려한 의상과 느린 동작과 온화한 표정으로 궁중 무용이 선보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라마야나를 바탕으로 전개된 춤인 Khon을 보고 배웠다. Khon은 일종의 가면극이며, 음악과 함께 선보여지는 특이한 장식이 특징적이다. 그리고 춤은 영웅과 여주인공, 그리고 원숭이와 유령(데몬)이 등장하는데, 말레이시아에서 제니어리 선생님 클래스에서 배운 바와 같이 각각 역할과 동작에 의미가 있었다. 공통점이 있는 한편, 춤의 성격에 다른 지점도 있었다. 예를 들어 앉는 자세에 이미 남녀의 구분이 있고, 의상이 이번 경우 화려하고 커서 제대로 입으려면 보통 반나절이 걸리는 등등, 같은 소재(라마야나)를 따르고 있지만, 상영 형태는 동일하지 않았다. 중간에 커 선생님도 이야기하셨듯이 말레이시아에서 본 무용과 가장 큰 차이는 마샬아츠 요소가 더 많이 들어가는 점이다. 말레이시아에서 배운 무용이 좀 더 유연한 동작을 손끝에서 발끝까지 추구했다면, 지금 배우는 무용은 동작이 뚜렷이 구분된다. 흐르는 것과 마디로 나누는 것으로 극단적으로 나눠 부를 수 있겠다.

그런데 막상 지식 정보 위주로 듣다 보니 무용수가 따라 배우는 시간도 많지 않았고 나는 지켜봐야만 했다. 시간이 흐른 뒤 수업은 끝났다. 몸으로 배우고 몸소 경험하기를 바랐지만, 이번 마스터 클래스는 그렇게 되지 못했다. 물론 충분히 유의미한 정보도 들었다.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고 머릿속에서 동작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일까? 말레이시아에서 느낀, 앞에서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경험을 하지 못해서 그런지, 팀원 무용수들도 나도 굉장히 답답해 보였다. 마치 설교나 훈계를 듣는 것처럼 거기에 있기, 과자를 집어 먹으면서 말레이시아 마지막 밤에 간 레스토랑 생각도 잠시 하면서 거기에 가만히 있었다. 잠주리아 선생님과 마마의 에너지가 우리의 에너지까지 끌어안아 함께 합쳐 상승한다면, 커 선생님의 수업은 에너지가 흡수되어 버린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방에 있던 장식물처럼 진열된 일본이나 중국, 그리고 태국의 골동품처럼, 우리는 에너지를 뿜어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이 날은 결국 수업을 마치고 밥을 먹고 호텔로 돌아갔다. 몇 시간 전을 다시 떠올리면서 뭔가 속이 찝찝했다. 어제에 이어 오전에 들은 임근준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도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모르는 나라를 이해하려는 태도, 그 밀도는 상당히 부여하기 어렵다. 어떤 경우에 모르는 것이 죄처럼 느껴지고, 또 다른 경우에 구원의 손을 내밀면서도 착취하듯이 보인다. 미술사를 통해서 동양 세 나라의 관계를 이해하는 일 역시 쉽지 않은데 이는 비단 미술사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태국의 무용을 정보와 신체로 배울 때 역시 이런 문제를 피할 수 없고, 잠주리아 선생님과 마마가 그랬듯이 보존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어떤 경우에 그 나라의 근대기가 남의 나라에서 틀지어지고, 어떤 경우에 기록되지 않는 것보다 기록되기 쉬운 것들이 더 잘 남는다. 그들이 직면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과 구원의 손길을 마련하듯이 정부나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학자가 보존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고민은 몸소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에서 뻗어 나가 다시 내게 돌아오는 질문이 되었다. 한국에서 일본인이 현대미술 씬에 속하고, 반대로 일본에 한국 동시대 미술을 소개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쉬운 문제가 아니지만 앞으로 고민을 해봐야 할 지점이다.

 

 

1월 27일: 호텔, 그리고 주변 지역

 

아침부터 상황이 좋지 않았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소문이 전염처럼 퍼지는 날이었다. 식사하러 왔는데 어쩐지 사람들의 눈빛이 평소보다 날카로워진 인상을 받았다. 중국 우한에서 퍼지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서구에 있으면 모르겠지만, 동양권인 태국에 있으면서 서로서로 경계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누가 어느 나라 사람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고 지금 오랫동안 체류하는 사람이면 중요하지 않은 문제인데 이날부터 나 역시 주변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소매치기를 조심하는 태도와 달랐다. 오히려 가까운, 아무 연관 없는 사람을 의혹의 눈빛으로 보는 것과 같았다. 누가 어디에서 왔는지 보기만 하면 알지도 못한다. 오랫동안 방콕에서 사는 사람일지도, 그리고 비단 동양권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한이 전염의 근원지라고 해 봤자, 거기에서 국적이나 행보는 뭉뚱그려 이야기하기도 판단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심지어 보는 것만으로 얼마나 판단할 수 있을까? 거의 무에 가깝다.

 

그런저런 소식을 듣고 하루는 흘러갔다. 나는 호텔에 들어가 침대에서 이번 여정의 메모를 조금 정리하고 쉬기로 하였다. 시간적 여유가 있기도 하고, 또 의외로 피로가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호텔에서 자는데 나는 딱딱한 침대나 이불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침대가 상정하는 체격도 그렇고 원래부터 바닥에 이불을 개서 자서 그런지, 침대는 나에게 맞지않았다. 몸을 빨아들일 정도로 큰 침대는 폭신한데 그렇다고 편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이상한 말이지만 몸소 배우고 익히는 첫 단계가 잠자리가 아닐까? 요람과 유아차, 그리고 집에서, 심야 버스, 비행기 좌석과 같은 이동수단에서 내가 앉고 편히 쉬는 공간은, 피로감도 물론이지만, 내 몸에 맞는지가 중요하다. 키도 작고 체격도 크지 않은 나는 작은 집에서 자랐고 지금은 독립해서 작은 집에서 이불을 개서 잔다. 침대 위로 올라가서 쉴 때면 항상 공중에 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불을 개도 다다미는 뚫리지 않는데 침대는 이상한 부유감을 제공한다. 누워 있는 듯, 떠 있는 듯, 잔 듯, 말 듯, 비몽사몽.

 

편히 쉬는 공간을 생각하니까 하나 더 떠오른 것이 있다. 며칠 전에 호텔에서 같이 택시를 타고 가는 데 다리를 서로 편하게 기대어 앉았다. 나는 거리감 확보라는 생각을 못 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가 신체 범위와 거리 두기의 관계에 대해 흥미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발을 벌린 채 지하철 좌석에 앉은 남자가 그렇듯이 그들 자신의 편안함을 일방적으로 주장한다면, 택시 안에서 같이 타고 가면서 서로 편하게 다리를 기대는 편안함은 말 그대로 ‘서로 기대는 관계’이다. 피로도 쌓여서 그런지 가는 길에 잠깐 졸면서 행선지를 갔다. 편안했고, 그때 이후로 서서히 내 긴장도 풀린 것 같았다. 타지 생활을 해오면서, 어떤 부분에서 타협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상대방에게 늘 있다고 생각해 왔다. 역사, 사회, 문화, 그리고 개개인의 관심과 무관심. 그런 고민은 과연 한순간에 해결될 수 있을까 생각해오다가 막상 대화를 시도하면 말문이 막혀버린다. 말문이 막혀버린다면? 포옹이나 안아주는 일이 그래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자리는 좁고 골드 클래스가 아니었지만, 다리를 기대어 앉으니 마음은 편했다.

 

 

1월 28일: 호텔Sala Chalermkrung Royal TheatreThe Stranger Bar(House of Drag Queens)호텔

 

일정도 거의 막판이다. 사실 일정상 말레이시아보다 태국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었는데, 금방 시간이 지나 출국일을 빼고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이렇게 몸이 따라온 것도 참 신기하다. 길게 해외에 체류한 경험은 고등학교 시절 아는 분의 초대를 받아 캐나다로 간 경험이 마지막이었다. 그때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이번 여정도 그럴 것 같다. 택시를 내리고 왓포 사원으로 가는 길에 관광객이 많았다. 신앙심으로 찾아가는 승려도 보였지만, 대부분 관광 명소로 찾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역시 그랬고 어떨 땐 사람이 이동하는 흐름을 향해 발이 움직였다. 오는 사람 중에는 며칠 전부터 소문이 난 코로나 사태를 우려해서 그런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우리도 마스크를 쓰면서 걸어 다녔다. 누워 있는 부처와 장식이 깨진 불탑을 보고 가끔 물을 마셨다. 이번 여정을 되돌아보면서 촬영 팀 선생님이 영상으로 질문을 하셨다. 덥다, 날씨는 좋다, 몸소 경험하고 몸으로 배우는 일이 지식을 습득하는 것과 달랐다 등등. 사실 어디서 토크를 할 때도 그렇지만, 나는 대본을 준비해서 라디오 방송처럼 읽는 걸 선호했다. 왜냐하면 즉각적으로 말을 하면 뻔한 말밖에, 설령 그것이 진심이라고 해도, 안 나오기 때문이다. 정말 뻔한 말만 했다. 한편으로 뻔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꼬치로 배를 찌르고 순간적으로 반응이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순간적으로 말로 대처하는 상황은 내가 아직 정리하지 못한다는 사실일 뿐이다.

 

말도 몸도 반응을 즉각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 피아노를 치면서, 토크 발제를 준비할 때도, 그리고 이번 여정에서 무용수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Sala Chalermkrung Royal Theatre에서 Khon을 구경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공연은 25분 정도 진행되었는데, 무용수들의 동작보다 나의 시선은 악기를 연주하는 멤버에 더 끌렸다. 음악만 들으면 리듬과 패턴이 규칙적인데,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이 규칙적 패턴이 몸에 붙어 있다. 기계적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오히려 맥박과 같이 신체 리듬과 같이 연주가 느껴진다. 저녁에 간 The Stranger Bar(House of Drag Queens)에서 갑자기 밖에서 스트리트 댄스가 시작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몇 명 아이들이 와서 뭐라고 말을 하니 음악과 함께 춤이 시작되었다. 맨바닥에서 아프지 않을까 옆에서 보고 있는데 꽤 잘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들에게 에너지가 느껴졌다. 태국에서 며칠 전에 열린 마스터 클래스 수업이나 코로나 사태로 이상한 긴장감에 휩싸인 분위기와 달리, 춤과 그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남달랐다. The Stranger Bar에서 진행된 퍼포먼스만큼 그들 역시 당당하고 힘이 넘쳤다.

지금 시간은 여정에서 돌아온 후의 시간이다. 우리는 그때 이후로 코로나가 어떻게 퍼지고 전세계적인 문제로 대두되었는지 잘도 알고 있다. 이곳 일본도 그렇고 한동안 못 가고 있는 서울도 상황은 아마 비슷할 것이다. 파타야로 가기 전날에 강력하게 느낀 에너지는 사실 지금 시점에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집에 있으면서, 그리고 최소한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지내는 나날에 몸소 시도해보는 일과 몸소 경험해보는 일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가상 환경의 통신과 연락은 어떤 면에서 편하기도 하다. 그래도 그것은 경험을 완벽하게 대체한다기보다 일종의 보완에 가깝다. 몸은 그런데도 우리에게 떼어내기 힘든 대상이고 또 주체이다. 그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아기 고양이와 어미 고양이를 봤다. 인간을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았고 어미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기 고양이는 뒹굴고 보면서 우리도 웃음이 났다. 아주 즉각적이고 솔직한 반응이었다.

 

 

1월 29일: 호텔파타야, Ko Lan 섬KAAN SHOW PATTAYA호텔

 

이 날은 아침부터 일찍 움직였다. 우리는 바다가 펼치는 파타야로 가기로 했었고 무용수 선생님들은 포스터 이미지로 들어갈 사진을 찍기로 했다. 같은 태국이지만 호텔에서 세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여서 우리는 터미널에서 고속 봉고차(?)를 타 출발했다. 사실 방콕에 도착했을 때 바다를 보기 어려웠다. 시내를 돌아다녔는데 강가도 호숫가도 가는 일이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지도 못했을 만큼 기대가 꽤 컸다. 봉고차 안에서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가끔 커튼 사이에 보이는 풍경을 봤지만, 바다는 보이지 않아 거의 모든 시간을 수면시간으로 보냈다. 정말 바다로 가고 있을까? 전혀 다른 곳에 가지 않을까? 이런 현실적인 불안과 함께 기대감도 커진다. 열대어가 많이 보일까? 망고가 맛있을까? 한국이나 일본과 얼마나 다를까? 순식간에 지나가고 졸린 눈으로 바깥을 잘 못 보는 차 안에서 그런저런 생각에 빠졌다. 기대감이 차오르는 공간이었다.

 

파타야에 도착하자 호텔 주변과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닫힌 공간에서 나와 사방을 넘어 펼쳐지는 풍경에 감탄이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몇 분 동안 페리를 타고 Ko Lan 섬으로 간다. 불안과 같은 흔들림이 아니라 이제는 배를 타고 파도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낀다. 날씨도 아주 좋고 바다와 잘 어울리는 날이다. 엔진 소리와 함께 페리가 출발한다. 파도가 선체에 부딪혀 가끔 크게 흔들린다. 몇 명은 감탄하며 몇 명은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인다. 다른 몇몇 사람은 흔들리는 선체에 몸을 맡겨 졸고 있다. 푸르고 맑다. 속도를 조금씩 늦추면서 부두에 정박한다. 뒤돌아보니 꽤 먼 거리를 타고 왔다. 몇십 분 전에 있던 위치가 저 멀리 보인다. 우리가 저쪽에 있었을 때, 배에서 내리면서 사람들은 이렇게 뒤돌아보고 같은 생각을 했을까? 저 멀리 있는 사람은 절대 보이지 않지만, 감각적으로 교신하는 느낌이 들었다.

점심을 식당에서 먹고 산을 넘어 반대편 해안가로 가기로 했다. 우리는 작은 오토바이 택시에 다 같이 올라탔다. 트럭처럼 생긴 탈것 뒷좌석에 모두 앉아 가파른 산에 올라갔다. 맨바닥이고 심지어 급경사여서 덜컹덜컹 소리를 내면서 우리는 올라갔다. 빠른 속도로 커브를 돌아보니 예쁜 푸른 색이 펼쳐진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바다 한 가운데를 배를 뚫는 것과 다른 느낌이 있었다. 바다가 점점 다가오면서 내 기대감 또한 커진다. 의외로 사람들이 많았는데, 해안가가 작아서 그런 것 같았다. 신발과 겉옷을 벗고 물에 들어갔다. 서서히 발밑에서 차가워진다. 그다음으로 허벅지, 배, 어깨가 차가워진다. 호텔 수영장과 달리 수영하면 가끔 짠맛이 입과 코를 통해 들어온다. 수영장의 물은 짠맛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깨끗하고 깔끔한 인상을 주는데, 그렇다고 해수욕장이 별로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발가락 사이에 들어오는 모래알, 바닷물을 먹어 딱 달라붙은 머리, 그리고 특유의 냄새. 이 모든 신체적 감각들이 바다를 수영장과 다른, 그리고 평소에 경험하기 어려운 것으로 만들었다. 일본 내륙에서 수영을 배우면서 자란 나에게, 바다는 개인적으로 흥미를 유발하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초등학교 수영 시간이나 수영 학원과 다른, 손과 발이 쉽게 닿지 않는 그 깊이감에 매료되었다.

한참 바다와 친하게 지낸 뒤, 해 질 무렵에 다시 육지로 돌아왔다. Khon의 무대를 보고 돌아가는 길에 탄 트럭에서 방콕의 야경을 보았다. 바다에서 사진 촬영을 마친 무용수들의 발에는 암초에 살짝 긁힌 자국들이 보였다. 몸이 먼저 움직인 흔적은 그때는 아파 보였지만, 이렇게 보니까 물의 저항을 무릅쓰고 도전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정말 다시 어둠으로 이번 방콕 여정은 마무리된다. 신호등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유동적인 패턴과 함께, 몸은 물결과 배, 그리고 오토바이 택시에서 전달되는 진동이 몸에 새겨졌다. 버스와 택시를 타고 호텔까지 가는 동안 역시 바닥에서 오는 진동이 경험을 상기시켰다. 바다로 가는 경험, 바닷물 속의 경험, 그리고 방콕의 경험. 즐거운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나서는 꿈과 합쳐지고 환상을 만든다. 환상의 높낮이는 지난 며칠 동안의 경험을 회상과 현실 사이에서 요동친다.

1월 30일: 호텔돈므앙 국제공항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일본 하네다 공항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데, 상황이 묘하게 비슷해서 그런지 일본어가 입에서 바로 안 나왔다. 요금이 비싼 일본 택시를 자주 안 타서 그런지 “Oh..” 혹은 “어..”로 시작하는 말밖에 머릿속에 없었다. 다행히 정신을 차려 일본어로 “えーと”라고 행선지를 이어 말했다. 몇 시간 전에 나는 호텔에서 먼저 작별 인사를 나누고 혼자 공항으로 출발했다. 이른 아침이었다. 공항에 도착할 무렵 서서히 어둠이 밝아졌다. 말레이시아를 경유해서 도쿄로 가는데 중간에 텀이 생겼고 아침 일찍 나온 시간과 시차를 계산하는 데 머리가 아팠지만, 무사히 하네다 공항으로 도착했다. 카카오톡을 열어 보니까 모두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었다. 인제야 도착한 나는 간단하게 메시지를 보내고 전철을 탔다.  아슬아슬하게 막차를 타 이번 여정을 메모와 사진으로 기록한다. 사진을 넘기다 다시 반대 방향으로 넘기고, 중간에 확대도 하고 블러가 심한 사진은 삭제했다. 사진을 보면 너무 많은 것들이 저장되어 있는데 내 몸에 신체적으로 와닿는 정보는 많지 않았다. 오로지 갔다는 사실을 증거가 되는 시각 자료로 남은 사진, 그 사진을 보면서도 어젯밤 버스에서 느낀 진동만큼 강력하게 나를 붙잡지 못했다.

 

궁극적으로 몸으로 혹은 몸소 배우는 일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실 러서치 트립을 함께 하기로 한 처음부터 고민하던 내용이었다. 그곳, 같은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것이 어떤 효과나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늘 지식적 정보만 접해온 입장에서 상당히 궁금한 지점이었다. 그런데 막상 몸을 출발점으로 획득되는 정보가 많았다. 모르고 있었지만, 아니 오히려 개별적으로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은 정보로서, 마치 나를 압도하는 것처럼 정보는 전달되고 감지된다. 아프다고 하기 전에 몸이 비명을 지르고, 서로 다리를 기대어 앉고, 진동과 함께 즐거운 기억들이 새록새록 나는 것처럼, 먼저 신체적으로 주어진 정보는 다른 신체적 자극을 거쳐 어렴풋한 인상이나 향기, 촉감으로 퍼져 나간다. 이런 경험은 막상 사진이나 영상에 잘 담아내기 힘들다. 수많은 사진을 찍었고 메모도 기록했다. 물론 중요하다. 그래도 그것이 오로지 글이나 시각 자료로만 남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다시 마마와 잠주리아 선생님의 기억으로 돌아간다. 계승의 어려움은 다른 데서 올 수 있다. 신체적 기록이 어렵다는 이유에서 오는 것은 물론, 오히려 계승하기 쉬운 틀을 마련해버리면 그만이라는 사실이다. 말레이시아와 태국의 인상은 사전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내 몸과 경험에 새겨졌다. 만약에 매번 의심과 회의를 반복했었다면, 그렇게 경험의 가능성마저 기각되어 버린다. 어쩌다 10년 넘게 서울에서 지낸 경우와 같이, 이번 리서치 트립은 어쩌다 가게 되었다. 모든 상황에 고민 없이 반응하고 받아들이는 기회는 사실 많지 않다. 택시를 탔는데도 길을 잃고,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데도 소통이 잘 안 되고, 제스처를 통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서로 대답하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말과 소통을 시도해보고 받아들이는 경험은 의외로 많은 장벽에 둘러싸여 있다. 그런 생각을 다 하지도 못했지만, 택시가 집에 도착했다.

 

다시 다른 공간에 와 있다. 서울역에서 잠깐 말을 거는 외국인 남자 두 명을 만났다. 영어를 다소 어색해하는 걸 보니까 영어권 아닌 나라에서 온 것 같았다.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니 먼저 상대방이 이렇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듣고 있는데 다시 물어봤다. “안녕하세요?” 하긴 아무 반응이 없거나 예의 없다고 표정으로 말하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정신을 차려 나도 “안녕하세요?”라고 대답을 했다. 서로 지하철을 타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고 한다. 말레이시아와 태국에서 영어를 좀 썼다고 해도 솔직히 급격하게 영어 실력이 늘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예전의 나와 달리 반응과 대답을 전달하려고 몸이 먼저 움직였다. 입에 잘 안 붙은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고 그들은 “Thank You,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떠났다. 그러고서는 중학교에다니던 시절과 며칠 전 말레이시아와 태국에서 경험한 기억이 다시 났다. 당연하지 않지만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그런 감각을 다시 멀리 밀어내고 초기 단계로 돌아가기. 몸으로 또는 몸소 배우기는 지식과 편견이 선수를 쳐서 옥죄어버린 나를 해방한다. 

 

 

나가며: 협업 혹은 공동 작업의 무용의 가능성을 내다보면서

이번 프로젝트는 최종적으로 어떻게 선보여질까? 안은미 컴퍼니의 지향점은 협업이나 공동 작업의 가능성을 재고하게 한다. 아시아의 각기 다른 역사, 그럼에도 어떤 부분에서 얽힌 역사와 사회적 있는 가운데, 어쩌면 협업과 공동 작업은 차이를 얼버무리지 않을까 혹자는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점은 바로 몸소 배우기의 단계에 다시 위치시키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몸으로/몸소 배우기는 쉽지 않다. 오늘날 경험의 상실이 논의되는 가운데, 몸으로/몸소 배우기는 어려움에 사실상 근거한 시도이다. 체격은 물론 배운 토대가 다르고, 나아가 무용마다 갖는 특징과 의미도 다른데, 이런 차이를 없던 걸로 해버리는 퓨전이나 섞어넣기와 달리, 이번 프로젝트는 그 원점으로 돌아오게 한다.

나아가, 이번 프로젝트는 그 원점에서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내다보려는 도전이 된다. 아시아 각 나라에서 전해져 내려온 ‘전통’이 어떤 부분에서 변화를 겪은 것처럼, 순수예술과 관광 산업화의 두 극단에서 무용은 , 아예 이해하기 힘든 것 혹은 뿌리 뽑힌 채 쉬운 것으로 전락해버린다. 이때 무용, 더 정확히 말해 우리가 계승되어야 할 전통 무용은 어떤 기점에 서게 된다. 너무 어렵거나 너무 뻔한 결론을 두 축이 밀고 나간다면, 이번 프로젝트의 가능성은 계승을 위한 변화에 창조적 계기를 가지고 온다. 보수적인 태도에 봉착한 양극에 나라마다 다른 요소들이 섞이는 가능성을 마련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이번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열린 태도’란 계승과 변화가 생기하는 기점이 된다.

우발적인 가능성이 도래하는 세계처럼 종종 묘사되지만, 여전히 세계는 국경을 사이에 두고 다른 한편으로 피상적인 유행과 따라하기가 만연되어 있다. 어떤 경우에 역사와 사회 상이 배제된   때때로 그 나라의 문화를 좋아하고 싫어하고, 반면 맹목적인 지지와 연대가 펼쳐진다. 무용가 안은미의 이번 프로젝트는 이런 배경을 고려하면서 시도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적 단절과 세계적 만연의 양자를, 거기서 벌어지는 문화에 대한 이해를 고려하면서 이번 프로젝트는 시작을 맞이하였다. 출발의 단계에서 결과는 내다볼 수밖에 없지만, 미래를 고민한다는 점에서 이번 프로젝트가 어떤 결실의 계기가 되리라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