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 Si Won

2020-08-12

안은미의 아시아적 통로

 

글 현시원

 

2020년은 원년이다. 2000년에 태어난 이들이 스무 살이 되는 해, 결과론적으로 코로나로 원격과 실물의 이격효과가 현실에 껌처럼 달라붙은 해다. 움직이고 싶지만 움직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공간의 넷(그물)을 흔들어서 새로 탄생시켜야 하는 해가 되었다. 2020년 1월 안은미는 오래 구상한 아시아 2020년 프로젝트를 위해 가까운 일본부터 향했다. 2020년 1월 7일부터 11일까지, 안은미와 안은미컴퍼니 무용가들은 일본 교토, 요코하마로 리서치를 떠났다. 2000년에 태어난 아시아 각국의 무용수들과 전통과 미래를 오가는 마스터들의 움직임을 직접 찾고 만나기 위해서였다. 

 

교토에서 안은미와 안은미 컴퍼니 무용가들은 만 84세 긴슈 선생을 찾아 춤과 이야기를 목격했다. 요코하마와 도쿄에서는 낮과 밤, 스트리트 댄스를 추는 이들과 즉흥을 만들어냈다. 마스터들의 스튜디오를 찾아 그들이 걸어온 과거의 춤-시간을 현재화하는 데 함께 했다. 아시아 마스터의 춤을 배우는 동시에 안은미가 따라 추는 춤은 생경했다. 안은미의 몸은 눈으로 익혀 한 순간에 뻗어 나오는 특별한 동작을 만들어냈다. 아시아의 춤이란 무엇인가? 어떠한 사랑 이야기가, 어떤 죽음과 태어남이, 어떤 사과나무와 복숭아나무가 있는가. 역사에서 튀어나와 몸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하나의 생동하는 ‘실체’였다. 

 

왜 부채인가? 왜 칼인가? 어떤 무기인가. 아시아란 무엇인가. 안은미란 누구인가. 천 년도 더 된 무덤 안의 뼈와 시체들이 췄던 춤이 오늘까지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두 개의 열쇠를 눈앞에 놓고 몸이 움직이는 한 측면을 살필 수 있다. 한 축에 안은미가 자신의 몸으로 실측하고 새로 쓰는 아시아 춤의 현장이 있다면, 다른 한 축에는 아시아 시공간이 쌓아온 춤에 대한 거대한 질문이 산적해 있다. 이 글은 그 첫 번째 열쇠로, 안은미가 직접 찾은 현장에 대한 기록이다. 마스터 긴슈와 그의 따님은 동작과 함께 말로 가부키에서부터 이어져 온 일본 전통춤을 현재화했다. 전통이 현재로 굴절된 이미지들과 함께 이들이 사는 시간은 2020년인 동시에 몇 백 년 전의 어느 대나무 숲으로도 이어졌다. 동작뿐 아니라 이론과 역사적 흐름도 들려달라는 안은미의 요청에 의해, 춤은 말과 함께 눈앞에 나타났다.

 

과거를 역사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것이 ‘원래 어떠했는가’를 인식하는 일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위기의 순간에 섬광처럼 스치는 어떤 기억을 붙잡는다는 것을 뜻한다. 역사유물론의 중요 과제는 위기의 순간에 역사적 주체에게 예기치 않게 나타나는 과거의 이미지를 붙드는 일이다. 교토의 스튜디오에서 나오는 음악과 부채를 둔 춤은 아시아의 다성적인 시간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안은미가 화두로 삼고 추었던 많은 춤들은 여러 겹의 시간들을 무대에 빵, 펑, 척, 턱, 여러 말들이 불가능한 동작들로 현현했던 바,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아시아의 정신성을 ‘시간’에 연결한 하나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필리핀의 군인이자 언론이이었던 카를로스 P. 로물로(Carlos P.Romulo)는 시간으로서의 아시아라는 관념을 제시한 바 있다.

 

“아시아는 시간이다. 이때의 시간이란 시계나 달력의 시간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경과이자 운동으로서의 시간, 부패의 요소가 내재된 성장이자 과정으로서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수동적이고 무표정한 변화의 시절에 대한 응답이며, 그 결과는 나이다. (중략) 필리핀 민족은 몇 살인가? 마젤란까지만 거슬러 올라가 답하는 것은 불가능한 나이이자 우리 민족의 자부심으로는 분명 받아들일 수 없는 나이다. (중략) 그리하여 우리가 수세기동안 아시아에 살고 있다는 자명한 진리와 함께, 필리핀대학교 음악원에서는 지역 공동체와 신앙생활에 쓰이던 고대 악기인 징뿐 아니라 모차르트를 가르친다.”

 

“아시아인들이 이루길 희망하는 것은 가급적 자신의 모국어가 표현의 동시대성과 긴급성을 얻는 것이다.”

 

 

장면 1. 마스터 긴슈(kinshu) 선생님 X 안은미의 몸 기록

장면 2. 안은미와 긴슈 선생님의 대화 

장면 3. 마스터 긴슈 X 안은미


2020년 1월 7일 화요일 오후 3시 

참여자 : 안은미, 무용수 다섯 명 (김헤경.베효섭.김지연,김승해,고동훈), 박은지, 쟝마리 샤보

영상 기록:  이진원

통역 및 가이드 : 성애순

 

 

사각형의 다다미방에는 사각형의 거대한 거울이 있다. VHS 기록 테이프, 공연 사진과 소품을 비롯해 긴슈 선생님의 자료가 가득하다. 사진을 배접한 색동의 액자는 하나의 사물과 이미지를 아카이빙하는 수공예적 방법론을 보여준다. 부채를 들고 그가 보여준 춤의 동작은 샘플인 동시에 하나의 스크립트였다. 사계절의 중요성, 부채라는 하나의 사물로 몸을 작동시키는 방식, 연애를 비롯한 남녀 사랑의 관습적 표현, 그리고 저 멀리 또 가까이 있는 자연물(해, 달, 산) 등을 바라보는 방식까지 ‘압축’과 ‘형식’은 일본 평민과 귀족들의 춤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언어 형식이었다. 긴슈 선생의 따님은 한국 아이돌 춤도 가능하지만,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일본 전통 의상을 꼭 맞게 입고, 규격화된 일본 전통춤의 동작을 부채와 함께 시작했다.

 

 

동작 1. 부채를 들며 

“일본 춤은 앉는 방법 서는 방법 손 쓰는 방법 숨쉬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노(가면) 그리고 가부키에서 파생된 것이 일본무용입니다. 일본무용은, 어느 나라 춤도 마찬가지지만 음악에 맞춰서 형식화된 동작입니다. 내용적으로는 봄여름가을겨울의 풍경을 보고 시를 읊듯이 춤을 추거나, 본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춤이 많습니다.”

 

“풍경을 본다는 뜻이 ‘게시키-풍경’입니다. 풍경은 여기 있기도 하고 저기 있기도 합니다. 멀리 본다, 가까이 본다, 부채 살을 보며 이렇게 이동시켜볼 때 풍경은 가깝게 또 멀리 있습니다. 창문에서 저쪽을 볼 때는 부채 살을 이용해서 창문 너머 무엇을 본다는 형식의 눈빛을 보냅니다. 이 부채 하나로 많은 것을 표현, 형식화되어 있습니다.”

 

“부채를 세로로 세운다-창문 여는 동작이 되지요. 부채를 세웠다가 양 손 끝으로 보내버리면, 문을 여는 것도 가능합니다. 부채를 수평으로 표현해 볼까요? 부채를 반으로 뒤집어 접어보면 또 다른 동작이 됩니다. 지금은 일본 술을 따르는 것 동작이 되지요. 도꾸리라고 표현을 합니다. 부채를 이렇게 옆에 전달하는 동작을 할 수도 있고요, 술잔을 따라서 먹는 모습이 되고, 술먹고 취하고(몸을 휘청거리는 표현을 한다), 저 멀리 해돋이를 표현하고, 산 속으로 시선을 돌려 올라간다. 이때 눈높이 시선은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부채로 풍경을 표현하는 것은 다양합니다. 부채를 들고 하나의 원을 그리고, 시선의 거리감을 둡니다. 시선 하나로 어디를 보는지, 햇님인지 달님인지를 표현할 수 있지요. 부채와 시선, 동작 하나로 사물을 바라보는 감정도 보여줍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옛날, 일본 전통 무용극은 거의 대부분이 연애 극입니다. 어느 시대나 사람들의 감정이 중심이고, 지금은 자유롭게 연애하지만 옛날 일본에서 여자는 계속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주 다소곳하게 자기가 표현을 하면 안 됐지요. 지금처럼 핸드폰 없었지요.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 쓰는 동작(손-먹을 간다)을 하고 있습니다. 먹을 가는 것이지요. 먹을 조심히 갈지요. (손가락 하나로) 손가락 하나로 써서, 이제 부채가 편지가 됩니다. 이렇게 편지를 쓰고 부채가 편지가 되어서 이걸 옷에 감춰서 안으면, 이 안에(옷 안에) 남자가 있는 겁니다.”

 

“님을 부르는 표현이 많습니다. 기초 동작을 바탕으로 극을 하는 데에도 다 형식회되어있습니다. 이 동작을 하면 편지를 쓴다, 누구를 만나려고 다가가간다, 하는 이야기로 유추되게끔 형식화되어 있는 것이지요.” 

 

 

동작2. 부채를 들고 오지기(인사) 

“일본은 ‘절 문화’라고 할 정도로, 인사가 규격화되어 있습니다. 요즘 일본 사람들도 잘 모를 겁니다. 언어가 생기기 이전에 일본에서는 정수리에 자신의 영혼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신성한 본인의 것이니까요. 모르는 사람을 보면 ‘나는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이런 증명으로 정수리가 보기에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정수리는 본인의 증명이었습니다. 현대에서는 언어가 발달했으니 ‘나는 누구입니다’ 하지만, 일본 사람도 왜 오지기(おじぎ[御辞儀 절문화, 머리를 숙이는 인사)가 이렇게 시작했는지 모를 겁니다. 젊을 때, 외국인들이 보는 일본 사람은 굽신굽신하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는데 지금은 절문화가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자신 있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부채로 인사하기, 오지기를 할 때 부채를 앞에 두는 이유가 있습니다. 부채가 바로 저쪽 세계와 이쪽 세계의 경계선입니다. 나는 당신보다 하나 아랫단계 입니다. 당신을 존중합니다. 그런 뜻에서 이걸 하나 둡니다. 부채를 준비하겠습니다.
부채를 앞에 두고 인사하는 것에도 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다도에서 온 것이지요. 

첫 번째는 손 앞에 모으고 45도 정도로 내리고 얼굴은 바닥과 병행이 되게 낮춰주세요.

두 번째는 다시 허리를 펴주세요. 남자분은 팔을 수평적으로 해서 겨드랑이를 열고, 여자분은 겨드랑이를 닫으시고. 남자분은 팔 간격을 넓히시고. 

이제 왼손을 위에 오른손을 아래에 두고 오른손으로 부채를 폅니다.”

 

“부채를 가지고 움직일 때에, 부채살이 딱딱하니까 빨리 움직이지 않아도 됩니다. 초조감을 갖지 마시고 천천히 우아하게 하시면 됩니다. 천천히 우아하게. 일본 전통 춤에서는 소도구를 아주 존중하며 다룹니다. 부채의 신이 있는 것이지요. 부채의 신은 빨리 빨리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이 소품이 있기 때문에 자신을 돋보기에 해주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는 소품을 중요시하게 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부채를 앞에 놓고 오른손으로 올리고 섭니다. 다리를 딱 모으시고. 부채를 아래로 자연스럽게 내려주십시오. 여기서 또 앉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무릎 끓고 한 다리씩 앉고 기모노는 땡겨서 잘 정리해야 합니다. 엉덩이가 뒤로 빠지면 안 됩니다. 상체가 직선인 채로 있어야 합니다. 쭉 끓어올리듯이. 여러분 아주 좋습니다.” 

 

 

동작3. 미끄러지듯이 걷는다. 

“이제 미끄러지듯 걷는 동작입니다. 앞다리를 올리시고 발바닥은 절대 보이면 안 됩니다
일본 무용은 발다닥을 절대 보이면 안됩니다. 다리를 살짝 들고 올라갑니다. 몸이 흔들리지 않게 계속 앞으로 걸어주세요.”

 

“중요한 것은 소리입니다. 소리가 나야 합니다. 걸을 때 스치는 소리가 나야합니다. 한 선 위를 계속 걷습니다. 엉덩이가 빠지거나 ‘허리를 넣는다’ 이런 표현이 있지요. 단전-중심을 딱 아래로 잡는다. 흔들리지 않고 허리를 딱 잡아야 합니다.”

 

“(85세 어머님 등장하며 이야기한다) 제 스승님은 머리에 컵을 놓고 물 떨어뜨리지 않게 걸었었지요.
자세가 안 좋은 애들은 대나무를 허리춤에 세웠습니다. 저쪽 열면 대나무가 많습니다. 그래서 여기를 계속 걷게 합니다. 계속 걷게만 합니다. 춤은 자세가 제일 중요합니다.

지금 대나무 대면 학대로 신고 들어갑니다.(웃음) 제 시대에는 그게 당연한 거였습니다. 가슴 펴라, 눈을 정면으로 봐라, 오히려 요즘 세대 불쌍합니다. 어떤 뜻에서는. 진짜 고수를 못 봅니다. 아주 중요한 것을 요즘 세대는 못 배워서 불쌍합니다. 옛날에는 스승님이 대나무로, 발로 찼어요. 뒤에서 니카이(두 번) 때렸습니다 스승님이 때리는 제자는 ‘얘는 따라오는구나’ 안 맞는 아이는 오히려 나를 버렸구나 하고 울었죠. 재능있는 제자들은 딱 두 번씩 맞아요.

딱 45도씩 내려야 합니다. 지금 그렇게 하면 폭력스승으로 고소당합니다. 저도 나이가 많지만 허리를 펴면 마음이 딱 무엇인가 잡힙니다. 여기까지는 옛날이야기고요, 다시 따님이 가르치십니다. 지금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싶으면서도 팍 –하고 나옵니다. 여러분 제 제자로 입문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웃음)”

 

 

동작 4. 고토부키(만세, 축하의 의미) 음악에 맞춰 시범 

“여러분 이제 음악에 맞춰 한 번 해볼까요”

-오지기를 합니다. 이렇게 정지 상태에서 시작하겠습니다

-오른손으로 부채를 잡고 섭니다

-걷습니다. 하나둘 셋

-부채를 펼칩니다.

-가슴에서 올려놓고 이것은 학의 날개예요.

-다음은 거북이가 됩니다. 거북이가 헤엄치고 있습니다

-밑에서 부채를 받아주고 앉습니다

-여러분 얼굴을 봅니다 저쪽 관객, 이쪽 관객을 봅니다 

-이것을 아주 정성스럽게 놓겠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학의 날개와 거북이가 있는 것은 장수의 상징이에요. 경축입니다. 거북이, 손가락을 쫙 펴면서, 네 손가락은 붙이시고 엄지 손가락을 안으로 해주세요. 오른쪽 왼쪽 보고, ‘이 마음을 받아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을 담아서 춥니다.”

-조금 더 하겠습니까?(다시 음악을 틀며)

-오른손 부채 앞으로 왼손을 팔꿈치에 놓고

-다시 관객들에게 인사, 

-부채를 가운데 놓고 뒤로 갑니다. 두 팔을 펴고

-뒤돌아서

-소나무가 솟아오르는 이미지입니다. 

-앞으로 보시고

-이제 손이 ‘중나무’가 됩니다. 이제 부채를 닫습니다.

-왼손에 부채 올려두고, 기모노 밑에 마치고

-고갯짓을 하시고

 

 

 

일본 춤, 춤추는 여자의 시초

변신이란 안은미의 오랜 주제 아닌가? 트랜스포밍하는 안은미의 신체에 관하여, 안은미가 사물과 함께 내통하고 외통했던 방식들은 일본 전통 춤에 깃든 ‘사물의 정령’과는 거리가 있다. 야생에서 달리는 사물, 목욕과 김장에 동시에 쓰이는 붉은 다라이를 가지고, 풍선과 동그란 땡땡이 무늬의 갖은 재료들을 가지고 안은미가 구축한 무대는 ‘야생’이었다. 변신하는 몸은 안은미와 안은미컴퍼니의 여성, 남성의 구분이 불가한 제 3의 성이었던 바. 그러나 안은미의 몸이 여성의 신체라는 점에서, 마스터가 들려주는 일본 전통 춤의 여성들이 누군가 항상 ‘기다렸다’는 점은 흥미로운 문제가 된다. 안은미는 이때 이렇게 질문한다. 가부끼는 누가 추었습니까. 또, 언제부터 일본에서 여자들이 춤을 추었습니까. 

 

“(85세 선생님의 말) 일본 무용은 여자춤입니다. 여자 춤이 기본입니다. 여자 춤을 다 마스터한 후에 남자춤으로 들어갑니다. 여자춤이라서 남자 무용수들이 여자 다리처럼 해서 그랬지만 참아주세요. 마스터하면 남자 특유의 춤사위가 들어갑니다.” 

 

“남자춤은 형식이 전혀 달라집니다. 여자 무용수가 남자 춤도 많이 추지요. 스모와 똑같이 가부끼는 전통적으로 남자만 했습니다. 체구가 작고 좀 아름다운 남자가 여자 역할을 했습니다. 여자는 무대에 절대 설 수 없었습니다.”

 

“안은미 선생님의 질문에 답하자면, 여자가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은 에도 시대부터라고 합니다. 오구미 상이라는 전설적인 인물이 있는데 그 분이 시초라고 합니다. 문헌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교토에 오구미의 비가 있습니다. 오구미가 강가에서 미친듯이 춤을 추었다는 것. 아주 유명합니다. 가부키 전용 국립극장이 있어요. 지금 오사카 가부키 전용극장에서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84세 선생님의 말) 낮에는 아주 전통적인 가부키를 하고요, 밤에는 낮의 전통에 요즘 시대에 맞는 가부키를 재창작해서 하고 있습니다. 수메구로* 가문의 공연은 밤 공연이 자신의 공연입니다. 아하 재밌지요. 낮에 보고 밤에 보면 확실히 비교가 됩니다. 밤이 더 재밌습니다. 보시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오사카라는 아주 오래된 가부키 전용극장에서 한다는 것 자체가 아주 특이한 거에요. 수메구로 가문이 다 가부키 배우 출신입니다.” 

 

“(84세 선생님) 일본 춤, 일본 신화 속 원조는 아마데라스 오미카미입니다* 제 스승이 말하길, 일본을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어떤 일 때문에 신들이 막 놀다가 그를 바위에 가둬버렸대요. 다른 신들이 몰라서 어쩌나, 오미카미가 나와야 세상이 밝아지는데! 걱정을 했다고 해요. 춤신이 이상한 춤을 막 추니까 다른 신들이 껄껄껄껄 너무 재밌게 웃어서. 바위에 숨은 아마데나스 오미카미가 문을 조그맊에 열어서 나왔다고 합니다. 오구미라는 신사가 교토에 있는 게 이것이 시조입니다.”

 

 

동작 5. 다시 처음부터, 인연의 표현 

“처음부터 다시 해볼까요? 살짝 살짝 움직어야 다리가 저리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하겠습니다.”

-오른손으로 잡고

-부채 품고

-한 다리 올리고

-일어서서
하나 둘 셋 

-부채를 펴고 

-수평으로 잡아서
학의 날개

-거북이 헤엄치고

-다시 부채 수평 펵 앉아서

-오른쪽 왼쪽 관객들 얼굴을 보고

-겨드랑이에 부채 내고 

-일어서서 세번 뒤로 갑니다

-두 팔 펼쳐서 고갯짓을 합니다

-뒤로 돌고 부채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 소나무

-다시 돌아서 중나무

-고갯짓

-부채를 닫으시고

-마치작에 부채를 손에 올리고

-고갯짓.

-새로운 동작 하나 추가하겠습니다.

-당신과 나

-큰 원을 그리고 원래 자리로 돌아옵니다

-오른 발부터 원을 그립니다

-오지기합니다

-이걸로 한 곡을 마칩니다

 

“일본 신사에 가면 남자 소나무와 여자 소나무가 뒹굴어서 아주 사랑하는 부부 모양이 많습니다. 사랑이나 장수, 학, 거북이가 복을 뜻하지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큰 인연으로 사시다가 지금 우리가 있게 된 것이다 하는 것이지요. 남자 여자 너와 나 이런 표현 방법도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고 있습니다. 돌고 돌고 도는 것을 표현하는 것, 풍년이 온다는 기운, 일본에서는 인연, 느낌, 오늘 그런 예감이 좋다, 그런 걸 중요하게 여깁니다. 기운이라고 해야 할까요?”

 

“소나무 이파리 모양이 부채 모양과 비슷합니다.  소나무처럼 지지 않는 파릇파릇한 영원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지요. 제가 팔을 세웠는데 이건 지금 중나무를 표현한 것입니다. 부채를 돌리는 동작과 부채를 크로스합니다. 이것은 인연이 돌고 돌아, 인연을 맺는다 라는 뜻입니다. 당신과 내가 이 세상에서 돌고돌고 맺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안은미) 이것 자체가 댄스입니다. 아름다운 제스처네요.”

 

“어른이 되어서 생각해보니까 이 춤에 대한 내용이 더 애뜻하고 중요한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동작에는 이 뜻이 있구나, 재밌게 배웁니다. 고전 발레 하는 분, 손 쓰는 법, 시선 쓰는 법, 몸의 표현 방법이 다르긴 다른데 그 안에 담긴 몸의 메시지는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들 댄스 기저에 흐르는 것은 똑깥지 않을까 싶습니다. 춤추면서 의미를 전달한다는 게 어려운 건데요, 이심전심되는 것이 있습니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안은미의 즉흥

긴슈 선생의 스크립트와 동작과 함께 안은미 컴퍼니 무용가들은 스치는 발자국 소리를 내며 걸었고, 부채를 양옆으로 조심스레 들며 허리를 세웠다. 안은미는 이 수업을 들은 후 3분 남짓한 즉흥을 했다. 음악을 듣자마자 360도 딱, 변화하는 안은미의 얼굴과 몸. 그의 몸은 아시아의 긴 시간들을 통과했다. 안은미는 “트랜스포밍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동양 춤을 그 나라에 가서 배운 게 처음이라고 했다. 

 

“(안은미) 느린 음악, 천천히 하는 게 상당히 힘든 것입니다. 느리게 하면 자신을 보는 거울이 되지요. 춤을 추면 ‘살아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84세 선생님) 저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마음 하나로 춤을 춥니다. 안은미 선생님 춤을 보니까 ‘옵니다’ . 좋은 말씀 듣고 공간, 자리에 오면 변하게 됩니다. 여러분 아주 재능 덩어리입니다. 안은미 선생님의 춤에 감동하였습니다.”

 

 

일본의 춤 역사를 따라가는 몇 가지 단서들

사계절, 자연

일본의 오래된 춤은 어떻게 전달될까. 위의 전통 무용에서도 알 수 있듯, 일본의 오랜 무용은 사계절의 변화에 민감하다. 바다와 수풀, 대나무와 산이 등장하며 사물로든 무대 배경으로든 사계절의 등장은 춤을 추는 몸을 휘몰아치며 다가온다. 고마가쿠(高麗楽)는 중세에 기록된 악서 교쿤쇼(教訓抄) 등을 참조로 하며, 한반도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일본에 도착한 인들의 모습을 구체화한 춤이다.

 

이부용의 연구에 따르면 “고시라카와(後白河) 천황(1127~1192, 재위 1155~1158)은 당시의 가요인 이마요(今様)를 모아 료진히쇼(梁塵秘抄)를 편찬했다. 료진히쇼 구전집(梁塵秘抄口伝集)에는 1174년 3월에 고시라카와 상황이 이쓰쿠시마(厳島) 신사에 참예(參詣)한 기록이 전한다.” 12세기의 작품에서는 이쓰쿠시마 신사에서 두 명의 여성 구로와 샤카가 춤을 춘 내용이 등장한다고 한다. 그들의 춤은 어떠했을까. 바다의 썰물과 밀물에 따라 춤을 추는 두 명의 여성에 대한 기록은 마치 꿈에 대한 묘사와 같이 시적이다.

 

 “아미타여래의 내영(來迎) 때 왕생자를 맞이하러 오는 기악보살의 춤사위처럼 아름다웠다고 전한다. 바닷가에 지어져 밀물 때 회랑 아래 기둥에 바닷물이 차오르는 이쓰쿠시마 신사에서 바다를 향해 펼쳐진 무대에서 공연된 고마보코는 바다와 관련된 이미지를 더욱 선명하게 이어주었을 것이다. 극락정토의 기악보살이 먼 곳에서 구름을 타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춤을 추며 오는 상상은 아득하게 먼 바다에서 도래인들이 배를 타고 노를 저으며 다가오는 모습과 겹쳐질 듯하다. 현대에도 히로시마(広島) 등 육지에서 이쓰쿠시마 신사가 있는 미야지마(宮島)로 가기 위해서는 정기유람선 등을 이용해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한다.”

 

 

 

사물을 사용한 춤

우리는 부채를 가지고 추는 춤을 배웠다. 일본 가부키, 노를 비롯해 과도하게 치장된 화장과 의상은 서구를 비롯해 일본 국내외의 오리엔탈리즘을 불러일으키는 장치이기도 했다. 어떤 기원이 있을까? 도깨비칼춤이라고 불리는 오니겐마이를 통해 가면의 종류 및 옷 또한 규격화된 절차에 의해 선택된 것임을 볼 수 있다. 

 

오니겐마이(鬼験舞)는 이와테현(岩手県) 남쪽지방에 분포하고 독특한 가면을 쓰고 칼로 격렬하게 춤추는 모습 때문에 도깨비칼춤이라고 불리고 있다. 오니겐마이의 오니(鬼;도깨비)는 불교로 인해 구원받은 도깨비로 흔히 생각하는 악마가 아니라 부처나 명왕(明王)을 지칭한다. 그것은 하나마쯔리(花祭り)의 사까끼오니(榊鬼)나 이와테의 도깨비 등의 이미지로 해석되어 전지전능한 특별한 신이나 영웅 그리고 불교에서의 부처님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그들은 부당하고 납득할 수 없는 권력에 맞서 도깨비(鬼)가 되서 싸우고 미치노꾸(이와떼, 후꾸시마, 미야기, 아오모리의 4개현을 가리기는 명칭)의 마을주민들에게는 비운의 최후까지도 소생하여 언제까지나 살아 있는 영웅적인 신들이었다. 오니겐마이에 연목에 등장하는 도깨비들은 대부분 이러한 신들이나 부처를 뜻하는 것이다(真澄, 1732, 211)

오니겐마이의 기원은 꾼은 머리에 게자이(毛采)를 쓰고 얼굴에는 가면(탈)을 쓴다. 가면에는 아운(阿吽)이 있고 네 가지 색이 있고 8명으로 출 때, 흰탈(白面)은 반드시 한명이 쓰고 다른 춤꾼들은 파란탈(青面), 붉은탈(赤面), 검정탈(黒面)을 나누어 쓴다.

 

옷 또한 중요하다. 

긴 소매의 기모노(平口袖)에 체크무늬의 기모노, 감색의 무네아떼(胸当)라고 하는 가슴 띠를 한다. 그리고 빨간 끈, 다스끼(赤襷)를 팔과 목을 연결하여 매고 팔에는 그물망사 구사리가다비라(鎖帷子)에 대꼬(手甲), 히로구찌바까마(広口袴)를 입고 허리 뒤에는 오오구치(大口)를 붙이고 그 위에 누끼다레(脱垂れ)를 쓰고 칼을 걸친다. 

 

다리에는 갸한(脚絆)을 감아 양말인 시로다비(白足袋)에다가 짚신(切緒の草履),른손에 부채를 가지고 왼손에는 중지에 v자로 빨간 곤고쇼(金剛杵; 지팡이)를 낀다.”

 

 

 

사랑 이야기

사랑은 왜 하필 춤을 통해 표현되어야 할까? 다음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우리는 일주일 간 프리스코의 캘리포니아 극장에서 공연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사흘 이상 지속할 수가 없었어요. 카즈노헤(Kasunohe) 같은 우리 고전 드라마를 가지고 미국 관객 앞에 설 정도로 미련했기 때문이죠. 관객 중 어느 누구도 우리 일본 역사에 관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이해하지를 못했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즉시 사랑극을 선보여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사랑이야말로 보편적이니까요. 그렇게 해서 미국과 유럽을 통틀어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작품 게이샤와 무사(Geisha and Knight)를 공연 하게 된 겁니다.”

 

시인이자 저널리스트로 미국에서 활동했던 노구치 요네지로(1875-1947)와의 인터뷰에서 가와카미 사다야코(1871-1946)는 세기전환기에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던 가와카미 극단의 서양 투어를 통해 자신이 느낀 소감을 이렇게 밝힌다. 일본 신파극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자신의 남편이기도 한 가와카미 오토지로(864-1911)와 함께 극단을 이끌고 서양으로 향한 그녀는 1899년부터 1900년까지 미국을 시작으로 영국, 프랑스, 벨기에 등을 차례로 방문하였고 그 이듬해인 1901년 중순부터 약 1년간 런던과 파리를 비롯하여 독일 각 지역 및 러시아를 포함한 동유럽 지역, 남부 유럽 등을 방문함으로써 보다 큰 규모의 두 번째 유럽 투어를 성황리에 마친다. 일본적인 것에 인류 보편의 사랑 이야기를 즉석 합체시킨 것은 이후 게이샤 공연에서도 지속 되었다.

 

 

오리엔탈리즘 

“셀프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인들이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부과된 지식과 관점, 어휘들 안에서 자기 자신들을 인식하고, 그 체계 내에서 자신들에 대한 지식을 만들어내며, 서구 오리엔탈리즘이 그들을 재현하는 식으로 자신들을 재현하는 방식을 말한다.”

 

 

장면 2. 안은미와 긴슈 선생님의 대화 

일시 2020년 1월 7일 

 

안은미 : 어떻게 처음 춤을 시작하게 되셨습니까?

 

마스터 : 한국이나 전 세계 마찬가지지만, 본인이 하기 나름. 자기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옛날부터 교토에서는 여섯살에 6월 6일에 어떤 전통을 배우게 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일본 교토의 전통문화 풍습 상, 제게 일본무용을 배우게 해주셨습니다. 제 자신이 골라서 일본 춤을 시작한 게 아닙니다. 왜 이런 풍습이 있냐면 옜날에는 무슨 일로 혼자 됐을 때 자기 아들 딸을 키울려면 여자의 예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다도 과도 가야금 일본 춤을 부모님께서 몸에 베이도록 하셨습니다.

안은미 : 따님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따님 : 저는 강제적으로 어머님께서 시키셨습니다(웃음) 첫 무대가 두 살입니다. 기억에는 없는데 기록 사진 보면 두 살 오개월 때 첫무대를 서고 있었습니다. 

 

마스터 : 무용가로서 왕성한 활동할 때 임신을 했어요. 뱃속에 있을 때부터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딸이 뱃속에서부터 춤을 췄으니까 따님이 제 선배입니다.

 

안은미 : 마스터님은 여섯살에 배울 때 춤에 대한 인상은 어떠했나요?

 

마스터 : 아무것도 모른채 갔더니 기모노로 갈아입히고 뒤에 서 있었는데 떨렸습니다. 이렇게 보고만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신 것처럼 부채를 들고 고갯짓을 하는데, 뭔가 ‘즐겁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 후에 전쟁이 있어서 다 끊겨버렸지요. 그러다가 초등학교 4-5학년 때 선생님을 찾아가서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 그 이후로 계속 왕성하게 활동을 했습니다. 어릴 때 스승님이 ‘너는 춤을 추면 안 된다. 재능이 없다’는 말을 계속 들었어요.
-그런 억울한 마음이 있었는데도 오기가 있어서 ‘나는 절대 지지 않겠다’ 생각했습니다. 제 스승님과 이후 같이 작업하게 됐지요.

 

안은미 : 어떻게 춤을 본격적으로 배우셨는지요?

 

마스터 : 제 둘째 선생님이 얘는 뭐니뭐니해도 솔직하고 순수하다. 지적을 하면 받아들이는 재능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무대에서는 어떤 역할이든 맡아서 했거든요.
같이 입문한 친구들은 주역, 공주를 했는데요, 저는 벌레도 했습니다.(웃음)  그런 경험들이 예술의 내공이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모르는 사이에 슝 올라갔네요. 하하.
저는 어떤 역할이든 기쁜 마음으로 맡아주는 친구다, 라고 인식되었습니다. 그게 지금 나의 힘입니다. 자기의 안무 보조로 나만을 뽑았다 밤 11시에 안무 시작했습니다.

 

안은미 : 따님에게 질문드릴게요. 어머니가 아님 춤을 추는 선생님으로서는 어떤 분이셨는지요?

 

따님 : 어머님 엄격하십니다. 어머님의 스승님이 더 더 엄격하지만 어머님도 그렇습니다. 어머님이 영화촬영소에서 배우들과 일할 때 가보고는 했는데요, 어머님 안무, 꼭 일본 전통 안무뿐 아니라 뒹굴거나 뛰거나 하는 걸 어머니에게 배웠습니다. 

 

안은미 : 전쟁 중 춤을 배우는 등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평생 춤을 추는 것이 가능하셨는지요?

 

마스터 : 전쟁 중 춤을 배우는 등 어려웠던 점 정말 많았습니다. 그런데 제 시어머님이 아주 좋은 분이었습니다. 시집 올 때 저는 무용 교실을 닫고 제자 다 끊고 왔습니다. 그렇게 좋은 걸 왜 그만두냐고 시어머님이 이야기해주셨지요. 그래서 젊은 마음에 ‘앗싸’ 하며 다시 춤을 시작했는데 그게 고생의 시작이었습니다. 시어머님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러나 아주 엄격하셨습니다. 연습실 나갈 때 마음 똑바로 해라, 어중간한 마음으로 가르쳐서 어떡하냐 하셨습니다. 제가 애가 셋인데요, 빨리 가르치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저녁에는 젖을 줘야 하니까요. 시어머니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동지입니다. 지금 행각해도 감동입니다.

시어머님은 춤에 대해서도 엄격하셨습니다. 교토 사투리로 ‘오늘 춤은 영 엉망이다’ 이렇게 하셨습니다. 춤의 결과가 좋을 때는 아무 말 안 하십니다. 지금도 시어머님 잘 만난 덕에 이렇게 분위기만 춤추고 있습니다. 너무도 좋은 인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남편도 제가 춤 추는 걸 좋아했습니다. 아버님 직업은 기모노 염색하는 것이었는데, 제가 아이들 엄마로서는 다소 엉망진창이었지요. 엄마인 저는 밤새 춤 추는 사람이었습니다. 스승님이 오사카에 계시는데 밤 11시부터 춤을 시작할 때도 있었습니다. 아기들은 어린이집 가야 하니까. 자전거로 왔다갔다 할까 고민할 정도로 치열하게 춤을 췄어요. 밤 11시에 시작해서 새벽 4시에 마치면, 시간이 아까워서 택시를 불렀습니다. 

 

안은미 : 춤을 배운 스승님들은 선생님 춤을 계속 봐주셨나요?

 

마스터 :스승님 나이가 70세 됐을 때 제게 ‘너는 나를 넘었다’ 하셨습니다. 이후 스승님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자유롭게 춤 추기 시작한 게 60세 정도일까요? 반짝 반짝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너무 즐겁게 춤을 추었어요. 그때 들었던 음악들의 느낌이 지금도 제 등에 남아있는 느낌입니다. 지금도 제 등에 있어요.(등을 가르키며)

 

안은미 : 항상 춤을 추는 엄마를 옆에 두는 것은 어떤 느낌입니까?

 

따님 : 엄마에게 강인한 마음을 배웠습니다. 어릴 때부터 ‘눈으로 많이 배웠다’고 할까요? 어머니에게 제일 많이 배운 것은 ‘보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정확히 보는 것이지요. 어머님은 관찰하는 힘을 길러주신 것 같습니다.

 

안은미 : 오래된 전통 춤을 현대에 가르치고 또 새롭게 하시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스터 :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서 연습하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여기 연습실에는 ‘뭔가가 있다’고 춤을 배우러 온 이들이 말합니다. ‘귀신이 있냐?’ (웃음) 그렇다면 아주 기쁜 일입니다.

 

안은미 : 일본이든 전 세계든 젊은 세대는 전통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전통과 지금 시대 춤 방식을 이어가려고 노력하시는지요?

 

따님 : 고민을 늘 합니다. 그러면서도 담담하게 춤을 추려고 합니다. 한때는 일본 전통에서 멀어진 세대가 팽배했지만 요새 다시 일본 전통으로 돌아가보자 하는 추세가 있습니다. 부모 세대들이 일본의 옛 전통을 매우 좋아합니다. 오사카 가부키 극장도 매진일 정도이지요. 예의범절 면에서 일본 전통을 배우자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또 새로운 아이돌 음악에 맞춘다든지 안무를 요즘 추세에 맞게 하는 것도 재밌게 하고 있습니다.

 

안은미 : 다시 태어나도 춤을 추실 건지요?

 

마스터 : 안은미 선생님 같은 분들 만나게 되면 하겠습니다.
좋은 스승을 만나지 않으면 자기 마음이 이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안은미 : 저도 춤을 추는 사람입니다. 춤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 이야기해주신다면 뭐라 말씀하시겠습니까.

 

마스터 : ‘다음 세대에게 넘겨줘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습니다. 다음 생에 환생을 하더라도 다음 생에 춤을 추면 행복할 것 같다고 믿습니다. 다음 세대, 그 시대의 정서, 가사와 그것을 넘길 것이기 때문에 대충대충 가르치면 왜곡이 됩니다. 아주 정확하게 형식을 알리려고 합니다.

 

안은미 : 2020년에 2000년도에 태어난 이들이 스무살입니다. 아시아 프로젝트를 하는 저에게는 젊은이들이 함께 춤을 출 동지입니다. 젊은 친구들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마스터 : 어느 나라나 춤이라는 것은 보물입니다. 보물을 다음 세대 젊은 친구들에게 이어가는 게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통이 있고 그에 맞는 형식의 틀이 있지만, 최초의 춤은 스트리트 댄스였습니다. 춤의 규칙이 물론 있지만 한편 자유롭게 추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춤을 지도하면서 중요하게 느끼는 것은 솔직한 마음, 순진한 마음입니다. 그 근저에는 스승의 것, 오래된 시간에 축적된 과거의 전통을 받아들이고 + 내 것을 만든다는 생각이 큽니다. 개성을 살려서 춤을 만들어 나갑시다.

 

 

나가며

아시아의 춤은 나뭇가지?

아시아의 춤은 대나무를 허리에 차고

닌자의 느낌이 나는 건 뭘까?

밤에 찾아온 귀신들 때문에?

꿈에 들려준 정답이 있다

몸만 예전같지 않을 뿐이지

여전히 마음으로는 춤추는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